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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22 16:22 수정 : 2005.04.22 16:22

연변으로 간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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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으로 간 아이들
‘수지타산’ 핑계 외면할수 있었을까

며칠 전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어느 성공한 출판사에서 근무하던 후배 편집기획자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최근에 그 직장을 그만두고 작은 출판사로 옮겼다는데 전직 이유인즉슨 자기가 기획하는 기껏해야 몇 천부 나갈까 말까 하는 예술서들이 몇 만 부, 몇 십만 부를 팔아본 사장의 성에 차지 않아서 눈에 났다는 것이었다. 그가 애써 기획해 출간하는 예술서들을 보면서 신선하고 의미 있는 기획이라고 느꼈었는데 그마저 볼 수 없게 되어서 안타까웠다. 적당한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해 앞으로는 영업적 성과도 감안해 경영자의 구미에 맞는 기획도 좀 하라고 했지만 그렇게 세상을 알아가고 타협해 나갈 후배가 안쓰러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 출판사가 아무리 전문출판사라지만 시작한 지 15년이 넘도록 베스트셀러 한 권 없고, 요즘 우리 출판계가 선망하는 근사한 사옥 하나 지어 출판도시에 입주하지도 못했으니 세상 잣대로 보면 분명 실패한 출판사 중의 하나일 것이다. 게다가 1000부 발행해 1년 안에 다 팔리면 성공작이라고 자족하고 있으니 내가 만일 그 경영자 밑에 있었더라면 목이 여러 개라도 며칠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출판이 문화의 척도니 견인차니 하는 출판명분론은 이제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출판도 어느덧 단순한 돈벌이로 전락해 버린 듯하다. 외솔 최현배 선생이 한글 큰사전 완간(1957, 을유문화사)에 부쳐 비로소 우리 민족이 진정한 자주독립을 성취했다고 감격해했듯이 출판의 사명이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이젠 별로 없어 보인다.

성공신화 만들기에 분주한 마케팅 시대에는 정성들여 만들었으나 잘 팔리지 않은 책에 대한 이야기보다도 대충 만들어 많이 팔았다는 이야기가 좀더 설득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인간 삶이 반드시 성공과 가치를 동시에 거머쥘 수 없듯이 책의 운명 또한 그런 것은 아닐까.

여성사진가 김지연은 아르바이트해서 돈이 좀 모이면 카메라를 메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취재하러 나가거나 러시아로, 중국으로 혹은 저 멀리 카자흐스탄까지 흩어져 사는 우리 한민족을 찾아다니는 좀 특이한 사진가다. 그런 그가 5년 전 중국에서 불쑥 돌아와 내민 사진 파일은 기아와 빈곤에 시달리다 연변으로 탈출한 이른바 ‘꽃제비’로 불리는 탈북 어린이 사진이었다. ‘러브’나 ‘가족’과 같은 좀 팔리는 생기발랄한 테마의 사진일까 했는데 역시 그답게 탈북자 문제를 사진으로 취재해 온 것이었다.

이 사진집에 수록된 사진들 앞에서 나는 거창하게 역사니 이데올로기니 출판의 사명이니 하는 이야길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또 전문출판을 고사시키는 우리 출판유통 구조와 편중화한 독자들의 독서 취향을 탓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다만 지금도 자신할 수 없는 것은 1000부 제작해 5년 동안에 500~600부 팔릴 책이라는 것을 그때 미리 알았더라도 이 책의 출간을 결정했을까 하는 것이며, 과연 나는 이 기죽은 어린아이들을 수지타산을 핑계로 외면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책 뒤표지에 이 책의 판매수익금의 일부를 탈북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기금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그들에게 나의 이 글이 기금을 내지 않으려고 하는 구차한 변명으로 들리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이규상 눈빛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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