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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22 17:37 수정 : 2005.04.22 17:37

#장면 1

지난 16일 저녁 경기도 부천시 심곡동의 한 네팔 음식점. 네팔과 미얀마에서 온 이주노동자들과 한국의 젊은 문인 등 100여 명이 한데 모였다. 박범신씨의 장편소설 <나마스테>의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지난해 <한겨레>에 연재됐던 <나마스테>는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카밀’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의 삶과 꿈을 부각시킨 작품. 작가 박씨는 주로 동료 문인들이 어울리는 일반적인 출판기념회를 마다하고, 소설의 주인공 격인 이주노동자들을 초청해 출간의 기쁨을 나누었다.

행사는 화려하지는 않아도 마음과 마음이 만나 국적과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이주노동자 권익 옹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와 한국에 와 있는 네팔 출신 노동자 모임인 ‘네팔공동체’의 대표 씨디 찬드라 버랄 등 주최측의 세심한 배려를 엿보게 했다. 한글을 읽기 어려운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네팔 말과 미얀마 말로 줄거리를 요약해서 소개하고, 박범신씨의 제자이기도 한 소설가 오현종씨와 네팔 노동자가 좋아하는 소설의 한 대목을 각자 제 나라 말로 낭송했다. 우리의 <아리랑>에 해당한다는 네팔 민요 <레썸피리리>의 가사를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적고 그 뜻을 새긴 인쇄물을 나눠 주어 함께 부를 수 있도록 했다. 작가 박씨가 초청한 소리꾼 채송희씨 등의 판소리와 민요 공연도 곁들여졌다. 책을 낸 한겨레신문사 출판부가 <나마스테> 100권을 기증했고, 노동자들은 작가의 서명을 받아 가며 행복해했다. 박씨는 “의례적인 출판기념회보다는 내 소설의 주인공들인 이주노동자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와 술을 대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면 2

20일 오전 국회도서관 대강당. 사형폐지를위한범종교연합이 주최한 ‘사형폐지 입법화 촉구대회’의 연단에 소설가 공지영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사형수를 주인공 삼은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낸 공씨는 소설 취재를 위해 사형수들을 만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회개한 흉악범들의 얼굴이 내 주변의 그 어떤 사람보다도 선하고 맑아 보여서 놀랐다”는 그는 “과거에 어떤 악행을 저지르고 얼마나 나쁜 마음을 먹었든간에, 회개한 뒤의 그들에게서는 깊은 곳의 신을 발견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나쁜 놈은 없애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사형제도의 근간인데, 그것은 또한 전쟁의 동기이며 자살의 출발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어떤 이유로도 남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살인과 전쟁과 자살이 없어질 거라고 믿어요. 저는 소설 취재를 위해 사형수들을 만나면서 그들을 교화시켰다기보다는 오히려 제가 더 교화를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공씨는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우리 세대는 그 누구보다 더 구치소와 가까웠음에도 막상 정치범이 아닌 사형수나 흉악범의 존재에는 무심했었다”며 “그들의 범죄의 바탕에 사회적 모순이 깔려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게 부끄럽다”고 말했다.


문학의 소외 또는 위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문학 스스로 자신의 입지를 좁혀서 소외와 위기를 자초한 것은 아닐는지. 사회와의 연결 고리를 끊고 고고한 성채에 자신을 가두는 것으로는 문학의 자존과 부활이 가능하지 않다. 사회와 인간 속으로 들어가 몸을 섞는 데에 길이 있다. 박범신씨와 공지영씨, 두 작가의 사례는 그런 점에서 귀감으로 삼아 마땅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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