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22 18:28
수정 : 2005.04.2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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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0년, 사진 60년-시대와 사람들 1945-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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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가 괴로운 이는 일기나 사진첩을 들춘다. 거기에는 향수가 아편처럼 존재한다. 그러나 시간의 거리를 소거하면 또다른 ‘지금·여기’가 있다.
<광복60년, 사진60년-시대와 사람들>은 ‘향수’와 ‘또다른 지금·여기’가 평형을 이루는 듯하지만 어느 순간 후자로 기운다. 전쟁과 가난, 그리고 질곡이 지금·여기로 이어지는 까닭이다.
하지 중장은 캠벨 사령관으로, 거리의 구직자는 청년실업으로, 만원버스와 차장은 지하철과 비정규직으로, 파월은 이라크 파병으로.
그러나 사건을 표나게 내세우는 보도사진집이나 정부기록사진집과는 달리 카메라 렌즈는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에 밀착돼 있다. 사건들은 흐릿한 배경으로 존재할 따름. 그래서 인물들은 주름져 있거나 늙었거나 퍼머머리를 했거나 슬픈 눈망울을 하고 있다. 현대사의 구겨진 갈피에서 구겨진 삶을 사는 그들은 결코 ‘그들’일 수 없어 사진가의 고통 역시 절절히 묻어난다.
독자(?)는 2가지의 파노라마를 체험한다. 그때·거기의 정지사진 200여점이 모여 우리의 현대사 동화상이 재구되는 것이 첫째이고, 56인 사진가의 개별적이고 개성적인 작품이 시간에 찐득하니 녹아들면서 한몸을 이루는 것이 둘째다. 민족사진가협회의 노회한 노림수가 아니겠는가.
고통스런 회억 가운데서 즐길 거리를 뽑아낼 수 있다면 책값을 충분히 건지는 셈이다. 한강 인도교 부근, 우물가, 골목안 풍경에서 길어올릴 미소. 그리고 자잘해 우리와 하등 다를 바 없는 군상의 표정이 모여 역사가 된다는 깨달음.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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