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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22 18:30 수정 : 2005.04.22 18:30

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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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주제가 똑 번역본 몫이다. 그런데, 저자는 송영복, 한국인이다. 어떻게 된 거야? 표지를 들추면 의문이 조금씩 풀린다.

“고대마야는 라틴아메리카의 본질. 그들을 알려면 그들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데 그게 침략자의 시각으로 왜곡돼 있다. 그들처럼 식민지배를 경험한 한국인의 시각으로 봐 보자.”

마야에 관한 책이라곤 백인국에서 흘러온 신비주의적 번역서가 고작이고 한국인이 지은 것은 여행안내서나 기행문 수준이다. 한국 역시 새끼 제국주의 흉내를 내는 판국에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하자는 저자는 대책없이 당돌하다.

저자가 ‘신대륙 발견’을 ‘유럽의 침략’으로 돌려놓은 것은 약과다. ‘콜럼버스’를 ‘꼴론’으로, ‘아즈떼까’를 ‘메시까’로 바꾸는 등 용어를 마야어 근처로 옮겨놓았다. ‘마야’나 ‘잉까’는 ‘제국’이 아니라 르네상스처럼 ‘문명의 이름’임을 밝히는 것도 같은 수준이다. 마야문자가 뜻글자가 아니라 소리글자적 요소가 많음도 지적한다.

한국인이 쓴 마애문명서 오리엔탈리즘 극복 노력
7년간 마야 발자취 따라 유적지 발굴작업 참여도

저자가 나아가면 독자는 그만큼 불편하다. 마야사회가 수직적 계층구조가 아니라 수평적 사회라는 주장이 그것. 노예제가 있었다는 기존의 주장은 서양고전이 말하는 사회구성체 이론에 꿰맞춘 결과라는 거다. 하여, 16세기 문헌 및 고고학 사료를 한꺼풀 벗겨 다른 결론을 낸다. 도시의 경우 도심 못지않게 부심이 발달했다, 추장과 평민 무덤의 부장품에서 차이가 없다, 정복전쟁 때 왕을 굴복시켰어도 촌락마다 전투는 계속해야 했다, 30~300명 단위의 자치주거지는 노예제가 필요한 규모의 경제가 아니었다는 점 등이 논거다. 저자의 석·박사 논문의 주제와 논증이기도 하다. 논문 심사위원과 2년동안 씨름을 해야 했음을 물론 아직 소수 소장파의 호응에 그칠 정도로 급진적이다.


몹시 거북한 주장에 이어 저자는 우격다짐이다. 셈법, 달력, 문자, 건축양식, 피라미드, 도시 등 그예 낯선 세계로 끌고 들어간다. 백인 구경꾼의 대열에서 벗어나려면 이 정도는 알아야 두어야 하지 않느냐는 눈부라림이다. 찬란했던 문명이 단순간에 끝나버린 원인은 그래도 수수께끼로 남겨두었다. 마야인 자신들에게도 잃어버린 기억인 것을 어쩌겠는가.

후학을 위해 고문헌을 해제하여 붙인 저자는 마지막 아퀴를 짓는다. “에르난데스 데 꼬르도바, 후안 데 그리할바, 에르난 꼬르떼스, 프란시스꼬 몬떼호….” 엄숙한 음성으로 명부에서 불려나온 이 자들은 바로 마야문명을 깡그리 짓밟고 마야인을 짐승처럼 도륙한 백인 전범들이다. 기억할진져.

7년여 멕시코에서 머문 저자는 어떻게 여행자가 아닐 수 있었을까. 그는 현대 마야어를 배웠고 유까딴주의 꼬바 유적지 등 발굴작업에 직접 참여했다고 전했다. 책에 실린 사진도 대부분 직접 찍은 것이다. 우리는 이제 한국인이 쓴 마야문명 입문서를 가졌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듯하다.

함께 읽어 좋을 책이 있다. <마야인의 성서 포폴부>가 그것. 구약성서의 천지창조 신화와 흡사한 내용으로 과테말라 지역에서 전승되는 이야기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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