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22 18:38
수정 : 2005.04.22 18:38
|
학교의 탄생
|
학교란 무엇인가. 동의하든 하지 않든 국가가 요구하는 인간형을 찍어내는 공간이다. 우리나라 학교는 100년전 조선왕조의 몰락, 과거제도의 폐지와 더불어 시작된다. <학교의 탄생>은 100년 전후의 신문·잡지를 통해 당시 학교의 풍경을 재구성함으로써 우승열패의 공간으로 변질된 학교교육의 뿌리를 더듬는다.
과거제와 학교 사이에는 신분제의 철폐가 놓여있다. 학교는 양반에겐 날벼락이었지만 ‘비양반’에게는 희망의 공간이었다. 사서삼경 대신 지리, 산술, 외국어가 교과로 자리잡았으며 법관, 무관, 의학, 외국어 등 중인이 배웠던 과목을 가르치는 특수목적학교가 설립돼 각광받았다.
학교는 계몽가의 꿈이 집적된 공간이었다. 애국 외 모든 욕망이 거세되는 금욕주의가 교실을 지배했고, 실직 군인들이 가르치는 체조와 교련은 필수과목이었다. <국민소학독본> 내용의 반 이상이 국내외 유명인물로 채워졌고 나파륜(나폴레옹), 라란부인(롤랑), 비사맥(비스마르크), 화성돈(워싱턴) 등의 전기가 널리 읽혔다.
학교는 서구문물과 조선적 전통이 충돌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학교와 그 주변장치를 통해 기독교, 근대스포츠, 자유연애가 유입되었다. 그 통과의례가 단발. 과거인 가정과 미래인 학교를 오가는 학생은 충돌하는 시간 속에서 고민과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단발한 학생들은 의병 앞에서 일본 앞잡이가 아님을 증명하는 호된 면접을 치러야 했다.
교통의 발달에 따른 학교의 확장태가 유학. 주요 유학 대상지인 도쿄는 ‘미래의 도시’였다. 야만국에서 문명국으로 이동한 학생들은 서양문물을 한국에 이식하는 것을 사명이라고 여겼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물론 보고들은 모든 것이 여과없이 도입된다. 수학여행은 유학의 축소태. 애국사상을 고취하려 시작된 국토순례는 일본제국의 위대함을 체험케 하는 만주와 도쿄 순례로 변질됐다.
숙명이었을까. 학교는 다양성보다는 획일성을, 개인보다 국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제국의 논리를 답습했다. 기차, 선교사 복장, 자동차 등 검은 색은 문명의 색, 군복을 모방한 교복은 계몽의 징표로 해석됐다. 우승한 자한테만 영광이 돌아가는 운동회는 생존경쟁의 각축장의 축소판이었다.
‘나’와 ‘다른 나’가 함께 어우러지는 교육은 무엇일까. 저자가 던지는 화두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