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29 18:11
수정 : 2005.04.29 18:11
국내작가들에게 애정 · 비판 필요
외국에서 한국 출판의 성장을 이야기할 때 가장 빛나는 부분이 어린이책이다. 지금은 해마다 해외에서 주는 주요한 상을 수상할 정도이니 말이다. 이 만큼이라도 성장한 것은 출판사, 작가, 유통회사들과 곧 창립 25돌을 맞이하는 어린이도서연구회의 헌신적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동도서는 창작동화와 그림책, 기타가 대략 3등분하고 있다. <동화를 먹는 치과의사>의 저자이자 창작동화 출간에만 몰두해온 신형건씨가 최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한 해에 출간된 국내 창작동화의 종수는 20여 종에 불과했다. 지금 한 인터넷서점에서 판매 중인 국내 창작동화는 2200여 종인데 그 중 2000년 이전에 출간된 것은 350여 종에 불과하다. 따라서 최근 5년 간 출간된 책이 85%나 차지하고 있다. 2002년과 2003년에는 각각 403종과 466종으로 정점에 이르렀다가 지난해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신씨는 올해에는 대략 250종이 출간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 그림책은 전집을 제외하고 대략 한 주에 70여 권 정도가 출간된다. 그러나 성수기에는 150여 권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난다. 1997년만 해도 몇 출판사가 ‘선구자적’ 자세로 악전고투하면서 한 해에 겨우 몇 권을 펴내던 것을 생각하면 매우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그러나 지금 어린이책 시장은 인지도가 높은 외국책 쏠림 현상이 너무 심각하다. 특히 그림책 분야는 상대적으로 완성도와 인지도가 높은 외국 그림책이 95%나 점령해버렸다. <돼지책> <우리 엄마> 등 앤서니 브라운의 책은 나올 때마다 ‘의심의 여지없이’ 독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존 버닝햄, 클로드 부종, 레이먼드 브릭스 등 국내에서 인기 있는 외국 작가들의 그림책은 나오는 족족 모두 국내에서도 출간되고 있어 ‘익숙한’ 저자 쏠림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그림책의 경우 1차 독자는 ‘글로벌’ 안목이 높은 주부들인데 그들은 오로지 책의 질만 놓고 평가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런 독자들을 대상으로 시장에서는 갈수록 대량 할인을 통한 공세적 영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단 세 출판사의 그림책이 한 홈쇼핑에서 2004년에만 2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는가 하면 한 외국 그림책 시리즈가 한번 방영으로 20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창작도서는 시장 진입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장은 커졌지만 출판사는 오히려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먼저 새로운 감수성과 개성적인 형식을 추구하는 신인작가를 발굴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 몇 년 간 김기정, 손호경, 공지희, 박기범, 오승희, 이소완, 고재은, 박용기, 김녹두, 김리리, 유은실 등은 ‘엄혹한’ 현실에도 적지 않은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들이 이원수, 권정생의 뒤를 잇는 대형작가로 성장하려면 아직도 많은 난관이 있다. 지나친 편가르기와 과도한 이념성은 넘치지만 전문잡지와 감식안 있는 연구자는 태없이 부족해 작품을 작품 그 자체로 봐주려는 자세가 너무나 없다. 좋은 책을 골라주려는 노력은 적지 않았지만 냉정한 비판의 부재가 시장을 주도하는 강력한 대형 ‘작품’의 탄생을 막고 있다. 따라서 우리 대형작가가 탄생하려면 출판기획자들이 신선한 안목과 추진력도 중요하지만 우리 작가에 대한 독자들의 특별한 애정과 비판이 더욱 시급하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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