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4.29 18:27 수정 : 2005.04.29 18:27

일본헌법 제9조를 통해서 본 또 하나의 일본

이른바 자학사관를 저주하며 자유주의사관을 읊조리는 일본 우익들의 주장은 유혈참극도 마다않고 오로지 이타적 목적을 달성하고야 만다는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외치는 사이비 종교를 떠올리게 한다. 도대체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돕기 위해 침략하거나, 식민지로 삼고 지배했다는 말이 성립할까? 빤한 거짓말을 사실이라고 뻔뻔하게 외쳐대는 자는 다른 의도를 숨긴 사기꾼이기 쉽다. 정색하고 진지하게 그런 주장을 한다면 정신연령이 바닥이거나 제정신이 아니다.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전범자들이 주도한 소위 ‘대동아 전쟁’으로 숨진 사람은 일본인만 300만명, 아시아 전역에서 2천만~4천만명에 이른다. 당시 조선인은 36만4천여명이 전선으로 끌려가 22만명 정도가 귀환한 것으로 돼 있지만, 창씨개명한 경우도 많아 정확한 수치는 아니며 전선이 아닌 다른 곳에서 희생당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일본군은 중국 난징에서만 진격 중에 약 30만명, 점령 뒤 4만2천여명을 도륙하고 빼앗고 불태웠다(3광작전).

평화헌법 성립 배경부터 개정여론 움직임까지 민중사적 관심으로 본 일본

%%990002%% 막바지에 이른 일본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 주도자들 중 다수는 그런 ‘대동아’를 영광으로 기억하고 그 부활을 꿈꾸는 자들 아닌가. 특히 일제 침략을 ‘아시아민족해방전쟁’ 따위로 분칠한 역사교과서를 만들고 채택토록하기 위해 광분하고 있는 학자와 정치가와 관료, 기업가들은 일제 때의 군국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질이 나쁘다고 <일본헌법 제9조를 통해본 또 하나의 일본> 저자 이토 나리히코는 지적한다.

일본헌법 9조는 다음과 같다.

1항=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하게 희구하고,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 국권의 발동 내지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및 무력의 행사는 영구히 포기한다. 2항=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및 기타의 전력은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저자에 따르면, 유독 일본 헌법이 평화헌법인 핵심적 이유의 하나는 제2항의 철저한 비무장 약속이다.

오는 5월3일로 시행 58돌을 맞는 평화헌법은 그러나 냉전을 예고한 1947년 트루먼 독트린, 중국 공산화, 한국전쟁과 함께 멍들기 시작한다. 1951년 9월 조인된 미-일 안보조약에서 미국은 미군의 일본내 주둔 의지를 밝히면서 “일본이 자국의 국방을 위해 점진적으로는 스스로 책임을 지게 되기를 기대한다”며 일찍부터 재무장을 요구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A급 전범자였으나 미국이 풀어준 기시 노부스케, 역시 전범인 하토야마 이치로 등 전후 일본정치의 대부들이 54년 ‘자주헌법 제정론’을 주창했다. 이 책은 평화헌법 성립배경과 함께 2000년의 중·참의원 헌법조사회 설치와 개헌여론이 과반을 오락가락하는 지금까지의 사정을 민중사적 관점에서 살핀다.

군사독재 시절 한국 민주화운동에도 적극 동조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저자의 이 책에 대해 한상범 교수는 평한다. “일본인의 입장에서 일본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본 책은 그다지 많지 않다.…일본의 역사를, 민중의 삶과 이상, 좌절 속에서 살펴보면서 동시에 그것이 세계사 속에서 어떤 위상을 갖는지, 어떤 위치에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아시아 민중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다각적으로 살피고 있다.…평화와 전쟁과 관련된 정치제도를 축으로 하면서 그런 정치적 상황을 민중이 어떤 식으로 헤쳐나갔는지를 자연스럽게 풀이해 준다.”

책은 저자가 1648년 근대 국제법의 태동을 알린 베스트팔렌조약 350돌을 맞은 1998년 독일 오스나브뤼크 대학 객원교수로 초빙됐을 때 만든 ‘또 하나의 일본-헌법 제9조를 중심으로 평화적 관점에서 본 일본의 사회·문화·역사’라는 테마의 강의록을 토대로 새로 썼다.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