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06 16:56
수정 : 2005.05.06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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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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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번역 출간된 영미 문학작품 가운데 54%가 표절로 밝혀졌다. 또 표절이 아닌 것 46% 가운데서도 전혀 신뢰할 수 없거나 신뢰성이 높지 않은 번역이 34%나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표 참조)
실태=영미문학연구회(공동대표 오민석·서강목)는 최근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를 펴내어, 해방 이후 2003년 7월까지 간행된 영미문학 36개 고전작품 572본을 조사한 결과 이 가운데 310종이 표절본임을 밝혔다.
표절본 가운데 소설 57%, 비소설 43%로 소설이 표절이 심했다. 표절이 심한 것들은 주로 스테디셀러. ‘주홍글자’(75%) ‘노인과 바다’(55%) ‘무기여 잘 있거라’(66%) ‘모비딕’(78%) ‘테스’(63%) ‘폭풍의 언덕’(68%) 등이다. ‘로빈슨 크루소’ ‘오만과 편견’ ‘막대한 유산’ ‘모비딕’ ‘무기여 잘 있거라’ ‘허클베리핀의 모험’ 등 13편은 아예 읽을 만한 추천본이 없다.
최근 들어서도 표절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맥베스’ 표절본 14종 가운데 8종이 90년대 이후, ‘햄릿’ 표절본 13종 가운데 8종이 95년 이후 출간됐다. 소설의 경우 ‘제인에어’ ‘테스’ ‘주홍글자’ 등 표절본의 반수 이상이 90년대 이후 출간된 사례가 적지 않다. ‘오만과 편견’ 표절본 14종 가운데 2000년대 들어와 출간된 것만도 6종에 이른다.
원인=스테디셀러일수록 출판사와 역자를 달리해 많이 출간된 점을 주목하라고 한 전문가는 말했다. 덤핑출판사에서 한탕을 노려 역자이름을 도용하여 책을 낸다는 것. 이번 평가작업의 책임연구자인 김영희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표절본에 역자로 표기된 분이 스스로 역자가 아니라고 알려온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들의 졸속 출판도 문제. 미리 출간시점을 정해두고 이에 맞춰 번역 등 일정을 조정한다는 것. 이에 따라 원고를 쪼개서 번역을 맡기거나 의뢰받은 번역자가 다른 사람에게 맡기거나 여러 사람에게 하청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전한다. 번역자 ㄱ씨는 자신도 4~5년전 고스트번역(실제 번역자와 명의가 달리 나가는 경우)을 한 적이 있다며 이때는 인세 대신 200자 원고지 한장에 3천원 정도의 고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해방~2003년 나온 572본 조사
스테디셀러 소설일수록 많아
한탕 노려 역자이름 도용키도
번역 일정 촉박 · 원고료도 낮아
번역료가 싼 점도 한 이유. 20여년 번역에 종사한 ㅇ씨는 구체적인 단가는 밝힐 수 없다면서 근근히 생활을 유지할 정도라고 말했다. 문학작품은 번역이 까다롭고 힘든데 비해 고료가 적어 형편이 나은 자연과학 쪽으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또 ㄱ씨는 단행본 외에 회전이 빠른 잡지 번역을 겸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해결책=김영희 교수는 “좋은 번역자가 나오려면 번역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중요하다”며 번역자에 대한 대우 외에 출판사와 독자가 공을 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출판사 대표는 자신들은 “원문을 대조하면서 교정을 보고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에는 번역자한테 보완을 요구한다”며 “그런 과정을 2~3차례 거친다”고 말했다. “납기를 정해 두고 출판을 서두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작업을 의뢰하면서 본인이 직접 번역할 것을 확약받는다고 밝혔다.
수용자의 몫 역시 중요하다. 김 교수는 이번 번역평가 작업도 그 일환이라면서 번역비평, 감시는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최근 들어 출판사 홈페이지에 독자들이 오역을 지적하고 출판사가 이를 받아들여 개정판을 내는 일 등은 고무적 사례라고 말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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