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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06 17:09 수정 : 2005.05.06 17:09

컬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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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화가들에 큰 영향을 끼쳤던 19세기 영국 화가 윌리엄 터너가 ‘전함 테메레르’ 등에서 묘사한 장엄한 일몰 장면을 그릴 때 즐겨 사용한 물감 카민은 코치닐이라는 남미 선인장에 기생하는 벌레의 체액으로 만들었다. 카민은 왕과 추기경의 대례복뿐 아니라 여배우들의 입술, 유목민의 낙타가방과 화가들의 캔버스를 붉게 물들이는 데 쓰였다.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는 ‘백장미’라는 반 고흐의 작품이었다. 몇년간 그 이름을 달고 있던 그림은 나중에 ‘장미’로 바뀌었다. 극히 최근에야 장미의 원래 색깔이 하얀색이 아니라 분홍색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난한 무명화가였던 고흐가 당시 사용했던 물감 중 일부는 질이 떨어져 나중에 변색되기도 했던 것이다.

비싼 청금석 재료를 ‘파란색’ 고호그림 제목 바꾼 ‘분홍색’
사라져가는 자연색 따라가니 다양한 색만큼 화려한 뒷얘기
미술이 화가들 만의 역사라고?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예술분야 담당기자였던 빅토리아 핀레이가 예술축제 취재를 위해 오스트레일리아에 갔을 때 멜버른의 대학 구내서점에서 랠프 메이어의 책 <화가를 위한 재료와 기법 안내서>를 우연히 본 것은 그야말로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어릴 때 본 사르트르 대성당의 800년 된 스테인드글라스의 파란색 유리를 지금 기술로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얘기를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핀레이의 색깔, 특히 자연 색 탐구에 대한 본능이 다시 꿈틀거렸다. 이후 수만년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미술의 토대인 유색 점토 오커(ocher)를 비롯해 19세기 중반 이후 지배적 지위로 올라선 화학염료와는 다른 ‘과거의 색, 사라져가는 자연의 색을 재발견하려는’ 그의 범상치 않은 노력이 전세계를 무대로 줄기차게 펼쳐졌다.

<컬러 여행>의 주제는 저자가 메이어의 책을 보고 한 다음과 같은 말에 압축돼 있다. “미술의 역사는 주로 미술을 창조한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미술의 역사는 예술 창조에 필요한 재료를 만드는 사람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이 책은 색 또는 그 재료에 대한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라 ‘색에 대한 이야기와 에피소드와 역사와 모험에 관한 책’이다. 오커를 비롯해 그가 찾아나선 검은색과 갈색, 하얀색,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 녹색, 파란색, 인디고, 자주색 등 10가지 색을 둘러싸고 세계 곳곳의 주민과 화가, 명화, 역사와 모험이 뒤섞여 빚어내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오스트레일리아 오커에는 원주민에 대한 백인 이주자들의 야만적인 억압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목탄과 연필, 잉크는 어떻게 등장했나? 검은색 안료는 그을음과 오배자, 복숭아 씨, 포도나무 가지, 심지어 상아 등으로 만들었는데, 오귀스트 르느와르는 상아로 만든 것을 좋아했다.

17세기에는 인간 사체에서 채취한 뼈로 검은색 원료인 골탄을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하얀색 안료의 재료로 많이 사용된 납성분은 화가 및 그것을 화장용으로 사용한 숱한 여성들에게 치명타를 가했다. 파란색의 대명사 울트라마린의 재료 청금석의 최대산지 아프가니스탄의 반군들은 청금석을 자금줄로 삼았다. 미켈란젤로의 1501년 작 ‘그리스도의 매장’에 등장하는 요한과 막달라 마리아의 변색한 옷차림, 성모 마리아의 부재는 당시 금을 제외하면 가장 비쌌던 울트라마린 등을 후원자로부터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 결과일 수 있다. 이런 사실들을 핀레이는 발로 뛰며 직접 확인한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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