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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06 19:02 수정 : 2005.05.06 19:02

1만2천km 항해체험을 마치고

최근 동료 문인들과 함께 현대상선을 타고 두바이까지 다녀온 소설가 한창훈씨(<한겨레> 3월26일치 20면)가 승선기를 보내 왔다. 편집자

17일간의 항해를 포함, 총 20일의 행보가 막 끝났다.

현대상선의 전폭적인 배려로 박남준 시인, 유용주 시인, 안상학 시인, 나 이렇게 네 명은 부산항 제5부두 허치슨 터미널에서 2200TEU급 컨테이너선 현대 하이웨이호를 타고 4월15일 아침 7시에 출발하여 제주해 동지나해 남지나해 말라카해협 인도양 아라비아해를 지나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두바이까지, 대만의 기륭, 홍콩, 중국의 얀티안,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의 포트클랑을 거치며 대략 1만2천km를 항해한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비쳐주는 푸른 바다와 같은 색의 하늘. 하늘에 배 한 척 가고 있고 그 그림자가 우리라고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풍경. 평균 20노트. 수심 30m에서 5000m까지. 다가오다 멀어져 가는 세계 각국의 화물선. 파도에 흔들리며 고기잡이를 하고 있는, 역시 각 나라의 어선. 수면에 말줄임표를 찍으며 날아가는 날치 떼와 부리를 세우고 덤벼드는 갈매기. 우리 떠나온 곳으로 날아가는 제비.


“해적 출몰한다”당직 자청

그뿐이겠는가. 낯선 항구의 낯선 풍취. 밤하늘 별보다 더 소근대고 있는 홍콩의 야경. 삿갓에 낚시대 드리우며 한시(漢詩) 한 편 몸으로 쓰고 있는 얀티안 노인, 내려보고 싶은 강렬한 욕구에 시달렸던 싱가포르 항. 넘게 되면 제(祭)를 지낸다는 적도를 눈앞에 두고 북서쪽으로 키를 틀어 찾아간 포트클랑(적도에 가면 붉은 띠가 그려져 있다는 선원들의 농담에 아이고, 그러면 그 힘든 도색작업은 누가 하냐고 내가 물어 모두들 유쾌하게 웃었다), 해적 출몰한다는, 하여 우리가 자청하여 무전기 배급받아 해적 당직을 섰던 말라카해협.

그리고 인도양. 한 바가지 퍼다가 끓이면 사파이어 결정체가 만들어질 것처럼 깊고 푸른 곳. 멋지게 공중 2회전을 하는 돌고래 떼의, 고래 물 품어내고 거북이 느릿느릿 헤엄치는, 노을 붉고 보름달 둥실 떠올라 윙브리지에 선 우리에게 은색 길을 보내는, 남십자성 반짝이는, 은하수가 옆으로 누워 흐르는 인도양.

박남준 시인은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표정에 그렁그렁한 눈물을 달고 하염없어 하고 안상학 시인은

“저 수평선 좀 보래이, 이 바다 색깔 좀 보래이, 고래 좀 보래이, 하이고, 별 뜬 것 좀 보래이…. 아, 싫다, 싫어.”

했는데 너무 크고 벅차, 아이 싫어, 나보고 어떡하라고, 몰라 몰라, 소리 그거였다.

“그래, 시상은 좀 떠올랐습니까?”

누군가 물었을 때,

“우리는 한마디로 궁극(窮極)을 만나고 있습니다. 궁극이란 말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아무런 언어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답한 이는 유용주 시인이며, 바다란 모름지기 북태평양이나 남극해 정도는 되어야지 않겠냐며 그동안 막연하게 무시했던 나는 급기야 머리 숙여 인도양에게 사과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바다는 현재이자 미래”

하물며 그뿐이겠는가.

낯선 항구에 접안하여 컨테이너 내리고 실은 다음 먼먼 다른 나라 항구를 향해 머리를 트는 배. 해도와 GSP, 레이더를 이용해 그 먼 곳을 한치 오차도 없이 찾아가는 항해부. 귀마개를 끼우고 종일 엔진을 점검하고 손질하는 기관부. 뙤약볕과 바람을 등에 업고 일을 하는 갑판부. 그리고 우리 네 명을 각각 5.5kg씩 살찌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조리 파트. 그들의 긴장과 고독.

우리가 보고 느낀 것을 이 짧은 글에 어떻게 다 말하겠는가. 대양을 거대한 마당으로 두고 서로에게 물건을 보내고 받는 교역의 현장과 업무를 수행하는 선원들의 땀방울, 그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이끄는 김완석 선장, 그리고 박태국 기관장, 그들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모습, 홍콩, 말레이시아, 두바이에서 자신의 역할을 기꺼이 해내고 있는 현지 주재원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넘길 수밖에 없는데 다만, 인류에게 있어서 바다는 모태의 장소만이 아니라 현재이며 미래 자체라는 각성과 별을 보며 항해하던 시대의 언어와 대양을 통한 소통과 상상력을 문학이 복원시켜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한창훈/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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