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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 한장씩 보태면 그게 힘”
겨울께부터 복원공사 본격화 화재 뒤 관람료를 받지 않아 부담 없이 절에 들른 관람객들은 여전히 아름다운 바다와 산의 어우러짐에 탄성을 지르다가, 불에 타버린 앙상한 목조건축물의 잔해에 신음을 토해낸다. 관세음보살이 항상 머문다는 전설을 간직한 홍련암이 그 큰 불에도 털끝 하나 훼손되지 않은 것에 놀라워하기도 한다. 관람객들 가운데는 서울과 경기도 등 멀리서 일부러 낙산사에 연등을 달러 온 사람도 있었다. 정념 스님은 경기 양평에서 복구 성금을 전달하기 위해 일부러 왔다는 한 50대 남자가 내민 봉투에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양양군의회 의장을 비롯한 의회 의원들과 낙산사 주위 마을 이장단, 상가 번영회장 등도 함께 찾아왔다. 군에선 낙산사 복원을 위해 지방비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빠른 복구를 위해 한 푼이 아쉬울 때지만 정념 스님은 오히려 거부의 뜻을 완곡히 전했다. 태풍 루사 등으로 인해 아직도 양양군의 빚이 1천억이나 되는데, 낙산사까지 군에 짐을 지우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정념 스님은 “지방비는 군민들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그보다는 마음이 있는 군민들이 기와 한 장을 씩을 낙산사에 보태주는 것이 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전쟁 때 불탔던 낙산사는 주민들이 모두 동참하는 울력으로 다시 세워진 전례를 갖고 있다. 정념 스님은 한국 불교 제일의 관음신앙지이자 연간 150만 명이 찾는 국민관광지인 낙산사가 한 두 사람의 돈과 힘이 아니라, 양양 군민들과 국민들이 보탠 작은 정성들에 의해 제 모습을 찾기를 바라고 있다.
정념 스님은 낙산사 주지와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에 임명된 지 한 달여 만에 이런 수난을 당했다. 모두가 망연자실해 있는 사이에 그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가고 있다. 절 화재 이후 장사가 안 된다고 하소연하는 상인들에게 “그간 바가지를 씌우지는 않았는지, 공손하게 대했는지 성찰의 계기로 삼자”며 “낙산사도 관람객들에게 정성을 다했는지 반성하며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3~4년 뒤엔 화재 전보다 더욱 사랑받는 지역이 될 것”이란 얘기다. 지금 낙산사는 문화재청의 문화재 발굴조사가 진행 중이다. 정념 스님은 “조사가 끝나는 겨울께부터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될 것”이라면서 “바다와 산과 사찰이 잘 어우러지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그는 “양양 군민의 정성을 모아 나무를 심은 곳엔 ‘양양 군민들의 동산’을, 국민들의 정성으로 심어진 곳엔 ‘국민의 동산’을 만들겠다”고도 했다.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이, 지금 화마 속에서 관세음보살이 미소 짓고 있다. 양양/글·사진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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