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11 17:27
수정 : 2005.05.1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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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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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을 시봉하면서 여러가지 겪은 경험을 이야기하다 보니 큰 스님의 진정한 모습이 어디 가버리고 스님의 팍팍한 모습만 그리는 것 같아 요새 와서는 글 쓰는 것이 많이 주저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상하고 너그러우신 모습보다는 상좌들에게 호랑이를 잡으라고 풍산개를 풀어 내모는 사냥꾼 같은 모습을 더 많이 보이신 것도 또한 현실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또 스님의 성정이 불 같고 급하신 모습을 말해야겠다. 당신 방에서 “누구 없나?” 하고 부르시는 소리가 들리면 밥을 먹다가도 숟가락을 내려놓고 입에 든 밥알도 뱉고 뛰어가야지, 입 안에 든 밥알을 다 씹어 삼키고 가서는 벌써 늦어서, “어른이 부르는데 빨리 오지 않고 지 할 일 다 하고 오는 법이 어딨어! 그래 느려 터져서 어데 쓸끼고!” 하시며 노발대발하신다. 상좌들 중에는 그래도 스님 성정에 맞추어서 잘 사는 스님이 있는가 하면, 어떤 상좌는 영 스님 성정하고는 ‘코드’가 맞지 않는 스님도 있다. 입에 든 밥알을 다 씹어넘기고 가서는 쥐어터지기가 일쑤인 상좌들도 있었다. 그리고 스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분별하시며 사셨는지, 그 기준이 무엇인지 말씀하신 적이 없어 알 수는 없으나, 상좌 두시는 것도 꽤 가리셨던 것 같다.
해방된 직후부터 당신 상좌 되겠다는 스님들이 많았던 모양인데,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받지 않으시고 청담 큰스님께나 자운 큰스님께 가게 하셨다고 한다. 지금도 누구라고 이름 대면 당장 알 스님이신데, 50년대 초 스님께 상좌되기를 간청하였으나 끝내 거절되자 스님 기거하시는 방에 물을 한 동이 부어놓고 가 버린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게 많은 스님 중에 뒤에 조계종에 큰 역할을 하신 스님들이 많은데, 그분들을 일찍이 상좌로 두셨더라면 스님께서는 지금과 다르게 더 일찍 출세하시어 불교계에 더 큰 일을 하셨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나는 곧잘 하곤 했다.
스님께서는 안마를 해드리거나 산책을 따라나서면 주인과 머슴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말씀하셨다. “세상이 바뀌어 머슴이 밖에 나가 출세하는 세상이 되었제. 그래도 출세한 머슴이 옛 주인을 찾아보고 은혜를 아는 것이 귀하제. 사람은 의리가 있어야제, 의리가 없으면 사람이 아이데이!”
원택/ 고심정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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