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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3 17:41 수정 : 2005.05.13 17:41

정복자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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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민족에게 야생적이고 야만적인 면은 전혀 없다. (우리 모두는) 다만 각자 자신의 관습이 아닌 것을 야만이라 부를 뿐이다.” 16세기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카니발’이라는 단어가 유래한 카리브해 연안 원주민의 식인풍설(카니발)에 대해 쓰면서 그렇게 말했다. 프랑스의 진보지 <르몽드> 편집국장 출신 저널리스트 에드위 플레넬의 <정복자의 시선>(원제: 세계의 발견)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다.

‘혼합인’이라는 제목이 붙은 1부와 2부 ‘콜럼버스와의 여행’으로 구성된 방대한 내용의 이 책의 집필 동기부터 보자. 1991년 아버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사막의 폭풍’이란 작전명으로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당시 <르몽드> 편집국장이던 저자는 여름 연재물로 탐사기사를 기획했다. “정열과 상투화와 이단배척의 시대에 평화의 길과 경청의 침묵을 되찾자”고 제의하기 위해서였고 탐사 대상지역은 마그렙(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예루살렘을 거쳐 바그다드까지였다. 제목도 ‘아라비아의 꿈들’이었다. 그러나 안팎의 사정 때문에 포기하고 대신 대상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항해를 더듬는 쪽으로 바꿨다. 때마침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500돌 기념을 한 해 앞두고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철저한 백인 유럽 중심의 ‘발견’이라는 발상을 뒤집어 보는 것도 화두의 하나다. 3달간 카리브해 연안 21개국(3개 자치령 포함)을 돌며 콜럼버스 도래 이후 뒤틀린 그 지역 역사와 현실을 취재했다.

1부는 2001년 9·11 동시테러사건 뒤 이번엔 아들 부시가 ‘충격과 공포’라는 작전명으로 이라크를 초토화하면서 후세인 정권을 전복하고 점령한 뒤 썼다. 가족정신, 혼혈인 등 몇가지 화두에 대한 에세이 형식을 취하고 있다. “(콜럼버스의 여정 추적) 10년 뒤 9·11테러의 충격 아래 나로 하여금 그때의 여행을 되살리게 하고 당시에 내게 열린 듯이 보이던 그 자취들을 다시금 좇게 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라고 저자는 1부 집필 이유를 밝혔다. ‘바로 그것’이란 “요컨대 본질적인 패배들이 그들의 일시적인 승리들로 포장돼 있음을 모르는 오랜 정복자 계보의 상속자들, 그 오늘의 승자들의 덧없는 확신들을 날려버리는 것”, “역사를 거꾸로 솔질할 것”(마르크 블로크), “역사를 거꾸로 읽어볼 것”(발터 벤야민)을 가리킨다.

1991년 신대륙 발견 500돌 ‘항로’따라 뒤틀린 역사 취재
아버지 부시 이라크 침공 10년뒤 아들 부시 또 침공…
‘야만적 인종주의’ 정당화 ‘정복’의 이중성 낱낱이 폭로

말하자면 이 책은 2부가 먼저 나오고 1부가 그 10년 뒤에 나왔다.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그 500년 뒤인 1991년 아버지 부시의 이라크 침공, 다시 10년 뒤 아들 부시의 이라크 침공. “(아메리카 발견 뒤) 5세기가 지난 지금도 인류는 여전히 우리의 상상세계와 두려움과 희망이 양극화되는, 이 동양-서양이라는 이항대립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유럽인으로서의 원죄의식이 강하게 배어 있다. “유럽의 부가 흑인의 생명과 가죽과 등을 기반으로 이룩되었음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런 수수께끼를 어찌 되짚어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네갈 역사교수는 대략 2680만명에 달하는 흑인 노예 강제이주는 16세기 이후 아프리카 대륙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쇠퇴하게 된 주된 요인이라고 말한다. 아이티에서는 1492년에 700만~800만명이던 원주민이 1510년에는 6만5800명, 1540년에는 250명으로 줄었다. 새로운 질병 유입이 원인이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백인들에 의해 뿌리뽑히고 착취당하고 (유대인 이상으로)무자비하게 학살당한 사회경제적 여건이 재앙의 토대가 된 것은 분명하다. 콜럼버스의 정복이 “2억년 전 고생대 이후”의 가장 심각한 파괴였다는 지적도 있다.

아들 부시는 이라크 침공 때 “미국은 아직 자유와 진보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나라들에게 그것들을 펼쳐 줄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떠들었다.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에서 부시 부자의 대선배인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909년 “백인종족의 팽창”은 “후진국” 국민들에게 “지속적인 이점을 가져다 준 것”이었다고 선언했다. 그는 그 4년 전 가쓰라-테프트 밀약으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를 보장해주었다. 당시 일본 ‘무사도 정신’에 미쳐 있던 그는 조선인은 일본인의 발가락 하나도 건드릴 능력이 없는 종족이라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책은 결국 과거 유럽이 저지른 ‘부족적 국수주의와 야만적 인종주의’의 폭력이 미국이 대표자가 된 지금의 서방에서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숱한 은유와 암시, 역설을 섞은 현란한 문장, 그리고 유럽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사정 때문에 읽기에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으나 치밀한 심층취재, 그리고 세계와 타자, 차별 등에 관한 풍부한 사유가 읽기의 또다른 맛을 느끼게도 한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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