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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3 18:52 수정 : 2005.05.13 18:52

알아주지 않는 삶

진재교씨 10년동안 문집 뒤적여
기존 잣대로 묻혀버릴 인물 포착

“난 글의 뜻을 모르지만 어떤 책을 누가 지었으며 누가 주석을 내었고 몇 질 몇 책인지는 휑하다오. 그러니 천하의 책은 다 내 것이지요.” 18세기 서적상 조생한테서 전문가의 자부심이 읽힌다.

<알아주지 않은 삶>은 조선 후기 전(傳)·기사(記事) 가운데서 이단적인 인물이야기를 모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두 가지. 조선 후기 인물들이 대상이라는 점, 현대인의 시각에서 선별해 묶은 점이다.

보통 정사(正史) 뒤쪽의 전·기사에는 사관이나 왕조의 이념과 부합하는 인물이 선택된다. 따라서 충신, 열녀, 효자 등으로 전범을 삼고 혹 간신, 악처, 불효자로써 후세를 경계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고귀한 잣대를 쓰지 않는다. 조선 후기가 대상인 까닭이다. 조선 후기는 충·효·열을 고취하는 선초와는 달리 체제가 이완되면서 다양한 문화환경이 조성된 때. 사전(私傳)이 공전(公傳)을 대체하여 기존 잣대로는 묻혀버릴 미미한 인물들을 포착해 냈다. 그러니까 인물전을 모아서 당대의 내면풍경을 드러내고자 한 것은 편역자의 영민함에 속한다. 10여년동안 도서관을 뒤지고 문집을 뒤적이는 끈기가 있어 가능했을 것이다.

안용복이 무명소졸로 일본한테서 울릉도과 독도를 지켜낸 사실은 알려졌으나 원중거의 <화국지>를 일본에서 입수해 더욱 충실한 이야기를 끄집어 낸 것은 편역자의 공이다.

홍양호의 <이계집> 문집본에는 빠진 최필공전을 초고본에서 찾아낸 것 또한 그렇다. 홍양호가 ‘시국사범’인 천주교도의 전을 지을 정도로 대담했다는 것과 문중에서 그것을 빼고 문집을 공간할 수밖에 없었던 정황을 밝힌 것이다. 천주교도에 대한 조정의 회유정책과 저간의 배교과정을 엿볼 수 있음은 물론이다.

민중의 편에 서서 1만명을 살리려는 대원을 세웠던 의사 조광일,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과학자의 길을 외롭게 걸은 김영, 그림에 살고 그림에 죽은 불우한 천재화가 최북 등 근대적 인간형을 ‘먹과 한지’에서 되살려냈다. 프로 바둑기사 김종귀, 과거 족집게 과외선생 류광억 등은 현대적 시각이기에 발굴 가능한 인물이지 싶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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