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19 16:33
수정 : 2005.05.1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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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서울 등촌동 <에스비에스> 공개홀에서 열린 스마일매니아 박승대 사장과 ‘웃찾사’ 개그맨들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박 사장이 웃찾사 맴버들과 화해의 몸짓을 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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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인물로 세상읽기
연예 매니지먼트회사 스마일매니아의 대표 박승대씨와 이 회사 소속 인기 개그맨들 14인이 서로 싸우고 있는 게 요즘 술자리 화제다. SBS의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출연 중인 윤택 등 14인의 개그맨들은 데뷔한 2003년에 SBSi, 스마일매니아와 3자계약을 일단 하고서 또 다시 2004년에 스마일매니아와 계약을 맺었는데, 14인은 바로 이 후자의 계약이 이중계약이라며 무효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양쪽은 18일의 공동 기자회견에 이르기까지 서로 번갈아 기자회견을 열고 변호사를 내세워서는 공방을 벌였고 네티즌 사이에서도 편을 갈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늘 그렇듯이 이런 식의 다툼에서 어느 한쪽 말만을 믿을 것은 못된다. 14인은 기자회견에서 계약 무효의 근거를 ‘노예’ 계약이라는 매우 선정적인 이유에서 구했는데 상당히 수긍이 가는 내용이다. 연예계의 관행으로 보아서 신참 연기자들은 극히 불리한 상황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는 게 우리의 ‘개념’이니까 말이다.
반면에 박승대 대표의 주장도 사람들에게 먹히는 것 같다. 공짜로 먹이고 가르쳐 가면서 무명 연기자를 키워 주었는데 이제 와서 난데없이 악질 계약자로 매도당하고 있다는 게 박 대표의 하소연이다. 한국사회 특유의 가부장제 온정주의를 기준으로 삼아 따진다면 14인이야말로 아주 배은망덕 한 셈이 된다. 네티즌의 의견이 양쪽으로 갈리는 것도 아주 당연하다.
일부 종이신문의 논조는 상당히 묘하다. 개그맨이란 본디 사회에 웃음을 주어야 하는데 서로 싸우는 게 꼴사납다는 것이 그 요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니까 수익의 분배를 둘러싼 사적인 다툼은 늘 있기 마련인데 개그 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세대인 나는 이번 개그 계의 다툼을 그 자체로 즐기며 지나치지를 못하고 쓸데없이 역사, 사회, 문화, 정치 등의 영역으로 확장해서 읽게 된다. 나쁜 버릇이다.
우선, 코미디나 개그에도 역사가 있고 상징 투쟁이 있다. 라디오 시대에는 만담이 있었다. “장에 소 팔러 간 사이에 낳았다 해서 장소팔이라우”라는 식의 빠르고 시끄러운 만담 말이다. 진공관 라디오 시절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장소팔과 고춘자 콤비는 만담 레코드를 내기도 했는데 TV에 밀려 순식간에 무대 뒤로 사라져버렸다.
1960년대 말 TV 코미디 초창기에는
의 <웃으면 복이 와요>가 있었다. 그 이전 순회 극단의 시절부터 살아남은 구봉서, 서영춘 등의 희극인 진영에 배삼룡, 이기동, 배일집 등의 새 코미디언들이 가세했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이 시기 코미디언의 전형은 배삼룡이다. 바보 캐릭터의 슬랩스틱 코미디가 ‘대세’였는데 오늘날 방송가에서는 이런 콩트 중심의 코미디 형식에 ‘정통’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소위 정통코미디를 몰아낸 것은 70년대 중반부터 태동한 ‘개그’였는데 전유성, 이상용, 임성훈, 최미나, 김병조, 이홍렬 등은 기존 콩트 형식의 구식 코미디와는 달리 2 - 3분 가량의 짧은 꼭지를 기본 포맷으로 해서 대학가에서 유행하던 유머에 바탕을 둔 새로운 유형의 웃음을 시청자들에게 선사했다. 일종의 세대 교체였던 셈이다. 70년대 청년문화, 대학문화를 배경으로 해서 탄생한 개그는 대중음악 쪽의 통기타 포크송에 상응하는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개그가 등장함에 따라 기존의 정통 코미디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는 상투형으로 몰렸고 반면에 기존의 코미디언들은 새로 등장한 개그맨들이 희극 연기도 제대로 못한다고 비판했다.
코미디와 개그 사이의 이러한 상징투쟁은 개그 쪽의 승리로 귀결되어서 80년대 중후반부터는 개그맨들이 코미디 무대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일방적인 승리는 아니어서 개별 코너의 형식은 전 시대의 콩트였다. 김형곤, 최양락, 심형래, 이경규, 최형만 등이 <회장님 우리 회장님> <동작 그만> 등의 코너에서 우리를 즐겁게 했다. 90년대 들어서는 김용만, 김국진, 김미화, 신동엽, 이영자, 이경실 등이 새롭게 등장했고 지금 이들은 주로 오락프로의 MC로서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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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로 소극장에서 일차로 검증된 개그가 방송에 진출하고 있다. 에스비에스 <웃찾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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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대 대표는 1967년 생으로 1986년 KBS 코미디 4기로 데뷔했다고 한다. 박승대 대표는 개그맨으로서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희미한 기억을 되살려 본다면, 어느 쪽인가 하면 보는 이로 하여금 안쓰럽다고 느낄 정도였던 것 같다. 키도 크고 얼굴도 긴 반면에 별로 웃기지 않아서였는지는 몰라도 ‘멀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던 것 같다. 굳이 딱지를 붙이자면 박승대 대표는 386세대인 셈인데 당시 선배 개그맨들의 인기 내지는 헤게모니에 눌려 제 뜻을 펴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박승대 대표가 개그맨으로 서서히 자리를 잡을 무렵인 90년대 들어서는 시트콤 등이 인기를 끌면서 코미디나 개그 프로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시들해졌고 반면에 각종 버라이어티 쇼나 토크쇼를 비롯한 각종 오락프로는 물론이고 드라마 등의 다양한 장르 안으로 코미디나 개그의 기능이 흡수되어 버렸다.
요즘은 배칠수, 김C, 김원희, 김수로, 신정환, 김성수 등과 같은 연예인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서 데뷔한 다음에 개그맨 못지 않은 입심과 재담과 개인기로 우리를 즐겁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80년대 초중반에는 공중파 방송의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서만 개그맨이 될 수 있었다. 뽑는 인원수와 경쟁률로 친다면 사법고시보다 더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개그맨들은 기수를 더 유별나게 따지고 군기가 아주 세지게 되었다고 한다. 혹은, 탤런트나 가수와 같은 연예인들과는 달리 개그맨들의 프로그램 준비 및 제작 작업이 집단적인 성격을 갖기 때문이라고도 설명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얼마 전 KBS의 어떤 개그맨이 후배 개그맨을 구타해서 구속된 사건도 이런 배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용만과 김국진 등이 한때 미국 유학인가를 떠났던 것도 구타 관행 때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가부장제’ 한국 사회에서 남성 개그맨은 선배에게 구타당하고 여성 개그맨은 남편에게 구타당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개그맨으로서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던 박승대씨가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개그콘서트>와 <웃음을 찾는 사람들>과 같은 프로그램이 성공하면서부터였다. 박 대표는 대학로에 박승대홀을 설립해서 신세대 스탠딩 개그맨들을 발굴해냈던 것이다. 박 대표에게는 ‘성공한 개그 CEO'라는 별명이 붙게 되고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되었다. 박승대 대표는 과거의 코미디 프로에서는 재벌 총수 옆에서 “좋습니다”만 연발하는 이사 역할, 혹은 심형래 등의 옆에서 곁다리로 곰 노릇만을 하던 조역 개그맨이었다. 하지만 최근 일이년 사이에 박승대 대표는 이수만, 송승환, 서세원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성공한 비즈니스맨이 되어 나타났다.
정색을 하고 말한다면 이번 사태는 연예 매니지먼트가 아직 충분히 근대화되지 않은 데서 연유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매니저와 에이전시의 일을 분리하지 않은 채, 게다가 기획, 제작하는 일까지 뒤섞어서 사업을 벌려 왔기 때문에 수익 분배에서 분쟁이 생긴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결국 연예 매니지먼트가 충분히 분업화, 전문화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정색하고 바라보기보다는 한국의 정치가 코미디나 개그의 발전을 막아 왔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 정치가 개그의 소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몇 년 전부터였고, 그 이전에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 1980년대 초반에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전두환을 상기시킨다는 이유로 해서 여러 가지로 ‘압박’을 받았던 것을 기억해보라.
다른 한편으로, 한국 정치 행태의 우스꽝스러움 자체가 코미디나 개그에는 마이너스였다고 할 수 있다. 2천억원대의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던 전두환씨가 통장에 29만원밖에 없다고 버틴 것이나 그의 아들 전재용씨가 130억원대 괴자금 은닉 혐의로 법정에 출두하면서 고물차를 타고 온 것이야말로 아주 웃긴 일이었다.
한국은 사회적, 계급적 갈등을 정치적 수준에서 표출시킬 수 있는 충분한 제도적 시스템을 아직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요전 번 재보궐 선거의 ‘시청률’, 그러니까 투표율도 매우 낮았다. 반면에 공중파 방송의 개그 프로는 나름대로의 시스템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관객들에 의해서 일차로 검증된 개그와 개그맨들만이 <개그콘서트>와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요즘의 스탠딩 개그는 슬랩스틱의 요소를 버리지 않은 채 하이 개그의 즐거움도 선사해 준다. 나는 특히 내 모국어가 구어로서 갖는 사회문화적인 힘을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요즘의 스탠딩 개그가 잘 보존하고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요즘 개그 프로야말로 정말 ‘마데인(made in)' 코리아라고 할 수 있다.
이게 바로 박승대 대표 등이 만들어낸 시스템의 효과다. 최근에 스타앤컴퍼니라는 이름으로 합병을 한 갈갈이패밀리와 컬투패밀리도 이 시스템에 끼여들었다. 박승대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배후세력의 존재를 언급했다. 이번 다툼은 새롭게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스템에서 개그맨의 상품 ‘가치’에 바탕을 둔 시장 ‘가격’의 협상권을 누가 독점할 것인가와 관련해서 벌어진 사태다.
처음에 양쪽은 “다 죽여버리겠다 ~허이짜 허이짜~” 하며 서로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싸우듯 했다. 그러다가는 전격적으로 화해를 해버렸다. 아, 그러고 보니까, 정치와 개그 사이의 공통점들이 떠오른다. 하나는 관객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마무리이고 다른 하나는 내부시스템의 후진성으로 인해 벌어진 사태의 책임을 언론에 뒤집어씌우는 버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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