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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9 16:52 수정 : 2006.02.06 20:22

‘당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제목이 은근히 강렬하다. 지금까지 ‘당신’을 겨냥한 책은 대부분 ‘당신은 당신 자신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었다. 성격을 바꾸고 생활습관을 바꾸고 사고방식을 바꾸면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대충 이런 책들이 말하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세상은 현재로서 족하고 선하다. 바뀔 필요가 없다. 개인의 임무는 그 속에서 살아남고 성공하는 것인데, 바로 이를 위해서 자신을 변화시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정반대로 접근한다. 바뀜의 대상은 내가 아니라 세상이다. 세상은 이대로 족한 것이 아니다. 분쟁, 불평등, 생태위기로 가득한 세상은 그냥 두면 파멸에 이를지 모른다. 더 이상 그대로 두어서는 안되는, 반드시 바꾸어야만 하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문제는 어떤 세상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인데, 책에서 말하는 바뀐 세상은 경제.사회.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세상이고, ‘당신’ 자신과 우리 자신이 직접 참여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세상이다.

책은 현재의 인류가 처해 있는 상황분석부터 시작한다. 세계의 상황은 비관적이다. 언젠가는 한계에 봉착해서 터져버릴 경제성장이라는 올가미에 걸려 있고, 생태적으로는 극심한 불균형에 처해 있고, 좌절감과 증오로 넘쳐 있다. 세계는 경제적으로나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을 돌파하려는 위로부터의 움직임은 너무 미미하다. 정부는 경기침체에 대해 너무 두려워한다. 국가경제는 무슨일이 있어도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 가면 몰락이라는 결과밖에 없다. 근본주의, 테러, 군비 확대 경쟁, 무역전쟁이 심화되다가 결국 전세계적인 대학살 사태가 도래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미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세계통화제도가 개혁되어 세계통화가 유통되고, 농업이 경제에서 다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재생가능 에너지 프로그램이 성공해서 세계경제의 구조가 변화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도래한다.

소비주의·시장근본주의 포로가 된 ‘20세기 현대인’
이대로 가면 세계는

파멸의 길을 걸을뿐…
책임과 믿음으로 사는 ‘문화창조인’ 입문 제시
21세기 지구생활 지침서

두가지 미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면 누구나 후자를 택할 것이다. 그러나 선택과 실천은 다른 차원의 것이다. 정부와 대자본은 의지가 없거나 터무니없는 낙관론에 사로잡혀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보통사람이 나서야 하는 것이다. 이들 실천 의지를 지닌 보통사람은 ‘문화창조인’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20세기의 기계론적·성장주의적 세계관을 고수하며 현상을 따르기만 하는 ‘현대인’과 달리 전일주의를 추구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서 세계 곳곳에서 활동할 때 이들의 힘에 의해 세상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이고, 이런 사람들을 늘리려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다. 20세기적 ‘현대인’은 자연의 무한함을 믿고 소비주의와 시장근본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다. ‘문화창조인’은 몰락을 예비하는 이러한 치명적 믿음에서 벗어난 사람들로서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게 생각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현대인’과 ‘문화창조인’은 책 속에서 이렇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교된다. 이를 통해서 독자들은 ‘문화창조인’의 반열로 들어서라는 암시를 받고, ‘문화창조인’으로서 책임감 있는 삶을 위해 지켜야 할 열가지 ‘계명’ 같은 각종 행동지침을 제시받는다.

의문은 있다. 보통사람들의 노력이 과연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인가이다. 책에서는 물론 실현가능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반론은 얼마든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논쟁을 하려 것이 아니라 설득을 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도록 설득하고, 이런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도록 만들어서 세상을 바꾸자고 하는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보통사람들을 위한 21세기 지구생활 지침서’이다. 지침서는 간결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 긴 설명이 들어가지 않는다. 당연히 책으로서의 재미는 조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책도 설명이 길지 않고 압축적이다. 감동이나 충격을 주는 맛도 적다. 그러나 깔끔하게 정리된 내용은 우리가 수시로 펴들고 살펴볼 만한 21세기의 새로운 세상을 위한 ‘행동지침’으로서 손색이 없다. 부록에 실린 ‘21세기의 과학적 세계관’도 짤막하지만 ‘문화창조인’의 등장이 새로운 과학적 연구결과와 들어맞는다는 보충설명으로서 훌륭하다.

책의 구성에서 한가지 흠을 찾는다면 ‘당신은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장이 군더더기로 보인다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선 사람은 어떤 계기로든 변화된 사람이다. 이들이 어떻게 초심을 지켜나갈 것인가도 중요한데, 이를 위한 내용이 들어갔다면 정말 훌륭한 지침서가 되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문화교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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