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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9 18:52 수정 : 2006.02.06 20:19

다시 에드워드 사이드를 위하여
빌 애쉬크로프트, 팔 알루와리아 지음
윤영실 옮김/ 앨피

<다시 에드워드 사이드를 위하여>를 꼼꼼하게 읽게 된 것은 한 장의 사진 때문이다. 책을 건성으로 훑어보다 끝자락에 실려 있는 문제의 사진을 보며 가슴이 아려왔다. 사진을 설명하는 문구는 이러했다. “이스라엘 병사를 향해 돌을 던지는 에드워드 사이드”. 앎과 함의 일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던 것이다. 그 사진이 그토록 인상적이었던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진보적 학술활동을 펼치던 교수가 장관이 되더니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는 맨 앞자리에 있는 현실에 분노해 왔던 터다. “권력을 향해 진리를 말하는” 망명자로서 지식인이 그리웠던 것이리라.

사이드의 사상과 삶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중용이라 할 수 있을 성싶다. 양극단을 느슨하게 종합하는 중간이 아니라, 그 팽팽한 긴장 사이에 놓인 외줄을 걸어갔다. <중용>에 이른 말대로 ‘이치를 택하여 끝까지 유지’(擇善而固執之)해 간 것이다. 먼저, 사이드는 고전적인 리얼리즘과 탈구조주의를 끌어안고 넘어서려 했다. 앞의 것은, 텍스트가 단순히 바깥에 있는 세계를 지시한다고 고집한다. 뒤의 것은, 세계가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텍스트에 의해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두 이론체계의 변증법적 통일에 이르려는 사이드의 지적 탐구는 <세계, 텍스트, 비평가>에 담겨 있다. 지은이들은 이 책의 성과를 “기호의 의미는 다른 기호들과의 차이에서 생겨난다는 소쉬르의 관점과, 텍스트와 세계가 단순한 반영관계가 아니라는 구조주의적 견해를 수용한 바탕 위에서 세계성 이론을 전개한다는 점”이라고 평가한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아랍인이면서도 기독교도였던 사이드는 세속비평을 통해 현실에 발언해왔다. 그는 오리엔탈리즘에 연루된 전문비평가들의 신학적 전문화뿐만 아니라, 민족주의가 낳은 신학적인 교의들과도 싸움을 벌였다. 억압된 것들의 귀환을 가능하게 하는 ‘안으로의 여행’이라는 대항서사를 내세우면서, 파농이 말한 ‘비난의 수사학’에 빠지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시온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까발리고 팔레스타인의 처지를 적극적으로 옹호했지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상호승인을 주장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원칙과 전략적 목표를 포기하고”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자 이를 맹비난했다. 서구사회에서는 아웃사이더이자 비난의 표적이 되었고, ‘자기 편’한테 “공격을 받으며 가슴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굴욕”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사이드는 한가운데를 놓치지 않았으니(允執厥中), “누구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강조하기로 선택한 외로운 개인”으로 살아갔다.

<오리엔탈리즘>과 <문화와 제국주의>는 사이드를 세계 지성사의 반열에 올려놓은 문제작이다. 앞 책에서는 유럽이 타자들을 정의하고 위치를 부여하는 방식을 드러냈고, 뒤의 책에서는 ‘대위법적 독해’를 통해 정전 텍스트의 정치적 세계성을 발견해냈다. 이 두 책이야말로 사이드가 걸어간 중용의 길이 궁극적으로 맞닿은 곳이 어디인지를 가리키고 있다. 그것은, 어떻게 해야 타자를 악마로 만들지 않으면서 자기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제, 등산로가 그려진 지도는 마련되었다. 사이드라는 큰 산에 오를 일만 남았다.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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