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19 20:08
수정 : 2005.05.1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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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모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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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두 부류란다. 버리는 부류, 간직하는 부류. 물건을 버리는 것은 자신의 꿈과 공상을 버리는 것이란다. <몽당연필 모으는 남자>를 쓴 영감은 당연히 후자다. 그것도 수집광.
헌 신발 예찬부터 예사롭지 않다. 새 신발이 아무 것도 비치지 않는 거울이라면, 헌 신발은 신발 주인한테서 취한 것을 온전히 보존한다. 헌 신발은 주인의 발모양·걸음걸이는 물론 발냄새를 보존한다고 너스레다. 화가이니만큼 몽당연필에 관한 사유는 압권이다. 몽당연필은 나날이 줄어들어 잃어버린 긴 연필의 추억이 된다거나 연필깎기는 뾰족한 침을 찾아내 그 침에 생식력을 부여하는 행위라거나, 연필은 종이 위에서 전속력으로 달리는데 생각은 연필보다 앞서 달리다가 잠깐 뒤를 돌아보고 연필의 달음질에 약간의 지성을 보탠다는 둥.
매맞는 아내였던 어머니를 닮은 감자, 어릴 때 못 먹어서 한맺힌 네슬레 초콜릿 포장지 모으기는 특수한 사연이 있어서 그렇다 치자. 자신이 머물렀던 곳의 조약돌, ‘소시민 중산층의 식생활 연구에 필요하다’는 먹어뱉은 씨앗도 봐 줄 만하다. 그러나 보고 있으면 황홀해진다는 끈, 쓸쓸한 일요일 물을 축이며 지켜본다는 스펀지, 질병 컬렉션이라는 자기 자신의 처방전과 약에 이르면 장난이 아니다.
가장 큰 컬렉션은 자신의 그림. 자신의 성채를 지키기 위해 비판매 전략을 쓴다. 주는 것도 안된다. 좋은 것은 좋아서 안되고 나쁜 것은 나빠서 못 준다.
못 말리는 것은 여자 컬렉션. 카탈로그는 보여줄 수 없다면서 A의 가슴, B의 엉덩이 식으로 Z까지 늘어놓을 참이다. 그렇게 모아 모아 17트럭이란다. 이제는 어떤 것을 갖고 잇는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단다. 일흔여섯 이 영감탱이 정말 대책없다. 참 재밌게 산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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