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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9 20:52 수정 : 2005.05.19 20:52

이종원 서울시립대 교수 · 과학철학

근대 과학사상의 올인,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현대 사회는 과학과 동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 “침대는 과학이다”는 광고 문구처럼 우리의 일상이 과학의 일부인지 과학이 생활의 일부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한편으로 과학은 핵·전쟁·환경파괴 등 대중에게 부정적 인상을 주기도 한다. 과학은 현대인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고 있다. 홍성욱(서울대 교수), 이중원(서울시립대 교수), 이상욱(한양대 교수), 장대익(한국과학기술원 강사)씨 등 4명의 과학철학자가 과학 속에 담긴 사상을 탐방하는 글을 번갈아 연재한다.


‘1665년 어느 가을날 저녁, 아이삭 뉴턴은 사과나무 아래에서 달을 보며 사색에 잠겨 있었다. 바로 그 때 사과 한 개가 떨어졌다. 뉴턴은 떨어진 사과를 쳐다보며, 받쳐주는 것이 없으면 모든 물체는 떨어지기 마련인데, 왜 달은 떨어지지 않을까하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 순간 문득 사과나 달 모두 지구 인력의 영향 아래 있지만, 달은 돌고 있기에 떨어지지 않을 뿐이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사과와 달에 동일한 법칙이 적용될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태양의 모든 행성들에도 마찬가지로 동일한 법칙이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이들 모두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자연법칙이 존재하지 않을까? …’

이 ‘뉴턴 사과’의 일화에서 사과 운동과 행성 운동을 만유인력 아래로 포섭해 가는 뉴턴의 상상력은 돋보인다. 그러나 이런 상상력이 만유인력 법칙의 형태로 공표된 것은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1687년이다. 그 배경을 보여주는 하나의 일화가 있다. 당시 과학자들은 ‘행성이 태양 주위를 타원궤도로 돈다’는 케플러의 발견에 직면하여, 그렇다면 ‘이들 사이에 어떤 힘이 작용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씨름을 하고 있었다. 이는 근대 역학이 해결해야 했던 최대 난제였다. 과학자 후크(R.Hooke)가 이들 사이에 거리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이 작용한다는 가설을 제시했지만, 증명에는 실패했다. 그러자 1684년 혜성 발견자인 천문학자 핼리(E.Halley)가 뉴턴을 방문했다. 뉴턴이 ‘위와 같은 힘이 작용하면 그 궤도는 타원이다’라고 답하자, 핼리는 이를 증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1687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일명 <프린키피아>)는 이렇게 해서 태어났다. 이 책에서 뉴턴은 수학적인 증명은 물론 실험을 통한 검증도 함께 강조했다. 이는 근대 역학이 이러한 과학정신으로 완성됐음을 상징한다. 후크와의 표절 논쟁으로 감정까지 상했던 뉴턴은, 현상들로부터 유추할 수 없는 사변적 추론에 불과한 가설은 결코 자연법칙이 될 수 없으며, “나는 가설을 만들지 않는다”고 강변하였다.


▲ 과학의 합리적 방법론과 이에 기초한 뉴턴의 과학사상이 담겨 있는 <프린키피아>.
이렇게 <프린키피아>에는 과학의 합리적 방법론과 이에 기초한 뉴턴의 과학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우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수학 특히 기하학의 언어로 쓰였다. 뉴턴에게 자연은 수학으로 쓰인 책이고, 수학은 자연을 읽는 언어다. 논의의 전개도 전통적인 기하학에서처럼, 몇 개의 기본적인 정의들과 공리들 그리고 정리들을 먼저 제시하고, 그 다음 이를 현상 설명에 적용하는 순서를 따르고 있다. 또한 뉴턴 자신이 개발한 미적분법은 물체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서술하는 데 결정적이다. 물질의 운동(혹은 현상)을 이렇게 역학과 수학으로 완전하게 설명한다는 것, 바로 뉴턴 과학이 현대 과학의 출발로 간주되는 이유다. 또한 여기에는 뉴턴 과학의 또 다른 정신, 곧 역학적·수학적 자연관이 숨어 있다.

역학적 자연관에 따르면 ‘자연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복잡하고 거대한 기계’다. 실제로 뉴턴은 우주를 거대한 시계에 비유했다. 이는 자연을 기계부품들과 (이들 사이에 작용하는) 상호관계의 합으로 본다. 이러한 태도는 먼저 전체를 분석하여 이를 구성하는 부분들을 탐구한 다음, 이들의 종합을 통해 전체를 추론하는 환원적 방법을 가능케 한다. 가령 자석의 성질의 경우, 자석을 구성하는 입자들의 성질과 상호 관계를 먼저 탐구한 다음, 이로부터 자석 전체의 성질을 규정하면 된다. 이는 자연 현상의 원인을, 그것을 일으킨 미시적 차원의 물리적 작용들에 의거하여 추적하는 태도로서, 현상 설명에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그러나 가령 생명체의 경우 생명체 전체를 보지 않고 구성세포들을 봄으로써, 생명체의 전일적 특성들을 인식하지 못하는 근본적 한계를 지닐 수 있다.

물질의 운동을 역학과 수학으로
완전하게 설명한다는 것, 바로 뉴턴 과학이
현대과학의 출발로 간주되는 이유다.
또한 여기에는 뉴턴 과학의 또 다른 정신,
곧 역학적·수학적 자연관이 숨어 있다.

▲ 뉴턴은 사과나무 아래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왜 달은 떨어지지 않을까 사색을 한 끝에 만유인력이 해답일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그는 20여년의 수학적 증명과 실험을 통한 검증 기간을 거친 뒤에야 만유인력 법칙을 공표했다. 시공사 제공
한편, 물체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서술한다는 것은, 물체의 존재적 특성과 운동에서의 변화에 대한 양화(糧化)가 가능함을 전제한다. 이러한 양화는 개념들의 모호성과 애매성을 배제시키고, 현상을 간결·명료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서술하도록 보장해 주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양화가 어려운 자연의 질적인 성질들을 표현하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근본적 한계도 지닌다. 곧 수학 언어만으로 자연 현상을 충분하고 완전하게 서술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프린키피아>에서 뉴턴은 실질적으로 크게 두 가지 작업을 수행했다. 제일 먼저 (1권과 2권에서) ‘(그것이 무엇이건) 힘이 주어질 때 일반적으로 물체는 어떻게 운동하는가’라는 운동법칙을 일반 원리의 형태로 제시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3가지 운동법칙들―관성의 법칙, 힘과 가속도의 법칙, 그리고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그것이다. 그런 다음 (3권에서) 만유인력을 예로 들어 만유인력의 법칙이 천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일반법칙에 만유인력이라는 특수한 경우를 적용(대입)함으로써, 자유낙하 현상, 지구의 타원궤도 운동, 달이나 혜성과 같은 천체의 운동, 조수 간만 및 계절의 변화와 같은 현상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일어나는지를 모두 성공적으로 설명하였다. 이는 자연 현상에 대한 과학의 합리적 분석의 전형을 보여 준다.

흔히 자연현상들은 겉보기에 매우 무질서하거나 임의적으로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어떤 규칙성이나 인과관계에 따라 발생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상들이 어떻게 규칙적으로 발생하며 그러한 규칙성의 원인은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은, 자연에 대한 합리적 분석에서 매우 중요하다. 전자의 질문은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는가’의 문제(How-question : 운동방식의 문제)이며, 후자의 질문은 ‘운동이 왜 일어나는가’의 문제(Why-question : 운동원인의 문제)로, 서로 성격이 다르다. 이 두 질문에 대답함으로써, 우리는 일어난 현상을 설명하고 미래의 현상을 예측할 수 있다. <프린키피아> 1권과 2권은 바로 전자의 작업의 원형을, 그리고 3권은 바로 후자의 작업의 원형을 보여준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프린키피아>는 뉴턴의 과학정신을 온전히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뉴턴 과학의 성공은 이러한 <프린키피아>의 과학정신을 다른 분야들, 가령 화학, 생명과학, 심지어 사회과학이나 예술 분야로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과학정신은 18세기 계몽사조의 등장과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하나의 과학사상으로 발전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그 과학정신을 세계에 대한 합리적 사유의 원형이자 근대적 합리성의 표본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막강한 영향 때문이리라. 그러나 영원한 사상은 없다. 언젠가 방법론을 넘어서고 윤리적·가치론적 평가도 반영하는 새로운 과학사상이 등장하지 않겠는가.이중원/서울시립대 교수·과학철학 jwlee@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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