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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26 15:40 수정 : 2005.05.26 15:40

1905년 5월27일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던 러시아 발트함대가 부산 앞바다 대한해협에서 도고 헤이하치로 사령관이 이끄는 일본 연합함대의 기습을 받아 궤멸했다.

Z.P.로제스트벤스키 중장이 이끌던 발트함대는 전함 8척을 비롯한 군함 34척과 공작선·병원선 등을 포함한 38척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 함대는 만주와 서해쪽에서 일본군에 고전하던 러시아군을 지원하기 위해 전해인 1904년 10월15일 발트해를 떠나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오는 7개월여의 길고 힘든 항해 끝에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진해만에서 대기하던 도고 헤이하치로 사령관 휘하의 일본 연합함대는 대한해협으로 들어선 발트함대를 덮쳤고 28일까지 이틀간의 전투 뒤 블라디보스토크에 온전히 당도한 러시아 함정은 단 2척뿐이었다.

미국과 영국은 이 전쟁에서 일본에 전비를 대주는 공채구입에 응했으며, 영-일동맹 당사자 영국은 발트함대의 이동정보 등 동향을 상세하게 일본군에 알려줌으로써 일본군의 승리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이에 앞서 1904년 2월8일 일본군은 인천 앞바다에서 러시아 함대를 공격하고 이틀 뒤 대러 선전을 포고했다. 1905년 1월1일 러시아 뤼순요새가 일본군에 점령당했으며 그달 22일에는 황제에게 청원하러간 러시아 노동자들에게 군인들이 발포한 ‘피의 일요일’사건이 일어나 러시아는 혁명의 폭풍속으로 휘말려 갔다.

10년 전의 청일전쟁에 이은 러일전쟁 승리로 일본의 조선지배는 확고해졌다. 그 2달 뒤인 7월29일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미국 국무장관과 가쓰라 다로 일본 외상이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상호 보장하는 뒷거래를 했다. 바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이를 진두지휘한, 일본 무사도정신 예찬자이자 미 제국주의정책의 선구자 제26대 미국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그해 9월 조인된 러일전쟁 강화를 위한 포쓰머스 조약 중재 공로로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그의 중재란 실은 전후처리를 서둘러 일본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한 일이었다.

영토가 반으로 갈리고 참혹한 동족상잔을 치른 뒤에도 반세기 이상 미국과 일본 등 주변 대국들이 강력하게 개입하는 오늘날 한반도 정세의 원형은 100년 전 바로 그 주역들이 토대를 놓았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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