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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중순 서울 삼청동의 한 전통찻집에서 만난 전인권씨. 음악과 대마초, 세상을 떠난 배우 이은주씨와의 친분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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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전인권이 만나고 싶어졌을까. 8월말 목표로 5집 앨범을 준비하고 있고, 무엇보다 5월말 책 <다시 이제부터>(가제, 청년사)가 출간될 예정이지만, 그 홍보마케팅 전략에 포섭 당해서라면 섭섭한 말이다. 들국화, 로커, 미사리, 대마초,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자동 링크되는 몇 개의 단어들에 최근 이은주라는, 치명적으로 선정적일 수 있는 키워드가 추가되어서? 아주 그렇지 않다고 도리질 치면 당장 위선자 딱지가 돌아오겠지. 그렇지만 오로지 그것 때문이라는 것도 진실은 아니다. 권력쪽에서는 오존층에 뚫린, 인체에 자외선을 투과하는 위험한 구멍이라고 호시탐탐 꼬나보고, 다른 한쪽에서는 완강하게 형성된 먹구름층에 뚫린, 햇살의 길을 열어주는 구멍이라고 환호하는 그런 존재란 어디서나 흥미롭다. 단지 흥미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통제 아래 사는 개인의 자유란 무엇인가를 성찰하게 만든다. 물론 그는 그런 문화적 아방가르드의 치밀한 전략적 사고를 전제로, 계획된 ‘사고를 치는’ 쪽은 결코 아니다. 다만 자유롭고 싶을 뿐이라고 한다. ‘다만 자유롭고 싶은 꿈’을 꾼다는 것이 얼마나 간 큰 짓인지, 그 간 큰 짓의 댓가를 치를 수 있는 자리의 사람이 그 댓가를 치러준다는 것이 얼마나 복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우 씨 길어지네, 솔직히 말해 버리자), 그냥 내가 전인권을 좋아해서, 만나러갔다.
-요즘도 대마초하세요?
=전혀 안해요. 약이라면 진통제를 먹고 있어요. 신경성 병인데 조금 심각해. 죽거나 이러는 건 아니고. 무리하면 면역능력이 좀 떨어져서 바이러스가 공격하는. 5년간 내가 정말 일을 열심히 했어요. 그래갖고 좀 쉬라고 있는 병이죠. 내가 그룹을 30년간 하고 있는데 이것 하나만으로라도 상을 받아야 돼요. 밴드가 여섯명이나 되는데 다 먹고 살아야 되니까.
-대마초 합법화 운동, 지금도?
=운동까지는 아니고. 지지하고 아니고는 필요도 없는 얘기예요. 피우는 것과 가두는 것 둘중에 어느쪽이 나쁘냐 하면 가두는 쪽이 나쁘다는 얘기죠.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대마초가 음악활동에 도움이 되나요?
=노래가 너무 좋게 들리니까. 아침에 노래를 틀고 대마초 피우면 반성이 되죠. 반성되는 건 사실 기분 좋은 거거든요? 자기 안의 억지스런 힘이 없어지고 편안해지면서 뭐 연주 열심히 해야지, 이렇게 되는 거죠.
-약의 힘으로 곡을 쓴다든가 한 적은요?
=있어요. ‘행진’이 그렇게 나왔어요. 다른 것들은...너무 규제가 심해서, 뭐 뭐 했더라, 야 이거 걸릴까? 피울까? 에이, 하지 말자. 뭐 이런 식으로 생활했기 때문에...
-대마초가 허용이 된다면?
=그때 피워보고 생각해야지.(웃음) 그게 누구한테나 잘 맞는 게 아니거든. 우리나라 국민 5분의 1정도도 아마 피우지 못할 거에요. 자기 양심을 찌르는 약에 속하기 때문에. 마약이 아니라 약이죠, 약. 옛날에 히피 애들이 삼청공원에 많이 왔어요. 전쟁이 뭔지 알고 평화롭게 시위하고 같이 어울려서 다니고 대마초를 피우면서. 머리가 참 똑똑해요, 그 사람들은. 난 아직까지 히피족 아니 히피적이예요. 못 잊어요. 옛날의 우드스탁이라든가. 얘기만 들어도 설레는 거 아니에요?
-네 차례에 2년간 교도소에 갇히셨는데, 후유증이랄까, 상처랄까, 음악에 끼친 영향같은 게 있나요?
=당연하죠. 가끔 굉장히 괴로워하고 있어요. 가끔이 아니지.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도 아침에 식은 땀이 나고. 판사가 열몇명이 쫙 있어요. 나 혼자 있고. 그런 악몽 꾸는 거예요. 사람한테 필요한 휠링이 아니예요. 독방에서 한 8개월 살았는데, 흉악한 곳이예요. 혹시 내가 여기서 평생 살지는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다 반은 항상 공포에 시달리고 살지만, 거기는 완전히 다 공포예요. 손에 쥐는대로 머리가 빠져. 못 걸으니까 다리가 혼자 움직여. 그때의 나쁜 기분... 이걸 정말 검찰쪽에서 알고 있어야 돼요. 내가 무슨 죽을 죄를 졌길래 이런 공포를 나한테 느끼게 하는지. 정말 그러지 마세요.
요즘도 대마초 하냐고? 약은 무슨, 진통제 먹어
그거 한국사회에선 하지마, 너무 괴로워져
록은 강슛이지. 슛을 날리는건 본능
이은주씨와는 레옹과 마틸다같은 사이였지
-그럼 좀 더 싸우시면 안돼요?
=(대마초) 하지마. 한국사회에선 하지 마. 그건 나한테 너무 괴로운 일이예요. 내가 네 번 들어갔는데 막상 들어가면 나 혼자예요. 절대 나의 동지가 없어져요. 내 주변이 멀어져.
-지금도 남아 있는 동지가 있나요?
=그럼요. 나와서 방송에도 나가고 CF도 찍고 그러면 사람들이 좋아하죠. CF제의 무지무지 들어와 있어요. 샴푸, 락 도어, 우동 이런 거, 맥주 들어왔었는데 내가 돈을 너무 많이 불렀어요. 액수는 비밀이고, 그래서 안됐고(웃음). 양주, 스카이라이프도 다시 하자고 들어왔고. 많이 들어왔는데, 저번 작품이 너무 히트했기 때문에 잘못하면 안 될 것 같아서(웃음).
-락 음악을 하시면서 자유 반전 평화를 말씀하시는데요. 일견 록은 굉장히 남성적인 장르랄까 마쵸적인 장르랄까, 공격적이고 그런 점이 있잖아요.
=공격적이라기보다 강하죠. 강슛이죠, 강슛. 슛을 날리는 건 본능이죠. 어딜 향해서 슛을 쏜다는 건...그런 거 없어요. 한국사람들이 굉장히 락 적이고 락이 어울리는 사람들인데, 음악하는 사람들이 그걸 못했어. 이번에 ‘나 어떡해’(준비중인 5집 앨범의 컨셉)에서 해야지. 세상이 왜 이렇게 나를 내 말을 안믿어 주나. 소위 말하면 날 잡아가두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 난 전혀 잡아 가두면 안되는 사람이거든요. 우리나라, 자유로워졌지만 자유를 모르고, 자유를 애용할 줄 몰라요. 검찰이 시퍼렇게 있는 한, 자유를 모험하고 행하는 건 뭔가 손발을 묶어놓고 네 마음껏 놀아 그런 거나 마찬가지예요.
-이은주씨랑 친하셨죠? 결혼하려고 했다는 얘기도 있어요.
=아, 그건 말할 수 없어요. 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예요. 어느 남자든, 이은주가 그렇게 예쁜데 어느 남자든 걔를... 그건 웃기는 얘기예요, 그죠? 솔직히 우리는 레옹하고 마틸다 같은 사이였어요. 은주는 마음이라는 거 생각을 많이 하는 애였어요. 누구나 그렇지만, 걔도 부모님하고 어릴 때부터 그런 걸 겪었고. 영화도 다 그래요. 그래서 나같은 사람이 필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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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이은주씨의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전인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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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씨와의 관계가 음악하는 데 영향을 주었나요?
=그럼요. 아름다운 애잖아요. 걔가 같이 내 음악에 에너지가 돼준다는 건 굉장한 힘이었죠. 지금은 또 걔가 없는데 내가 그리워한다는 거, 휠링이 되잖아요. 아무 노래나 부르는 게 아니라, 걔가 떠났다는 게 피아노음이라도 하나 더 사랑하게 되고. 걔가 피아노 쳤으니까.
-곡을 쓰셨나요?
=영원한 사랑이 되기를 빈다, 그렇게 해놨어요. 옛날 노래 하나가 너무 잘 어울려요. <아직도>라는. 그리고 한두곡 정도.
-음악은 들국화 시절의 전설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애창곡도 옛날곡이 많고. 돌파구 같은 걸 생각해본 적 있나요? 아님 계속 전인권은 전인권인가요?
=전인권은 전인권이죠. 가끔 가다가 음악이 음악으로 안 들릴 때가 있어. 일로 생각할 때가 있어. 그런 거는 있으면 아침에 운동해요. 제가 달라지잖아요. 지금 현재로는 내 몸이 무리하면 안되니까 운동을 많이 할 수 없지만 하루에 한시간씩 밤업소에서 노래하는 건 큰 운동이 돼요. 지구력도 생기고. 미사리에 <아테네>라는 데가 있어요.(그는 이 대목에서 녹음기에 대고 “이거 꼭 넣어야 돼요”라고 속삭였다.) 미사리가 우리 음악하는 사람들한테는 희망같은 곳이예요. 음악하는 사람들이 거기 상권까지 없어지면 힘들어질 거예요. 그래도 전 거기서는 무법자죠. 왜냐면 사람들이 너무 좋아해주니까. 월 2천? 그거 가지고는 우리가 움직일 수가 없죠. 밴드는 자기 악기가 좋아야 되는 거예요. 그것까지 생각할 때 그것만 가지고는 힘들죠. 그러면 3천? 그러면 4천? 뭐 그렇게 물어보실 거죠?(웃음) 나만 조금 나은 거지, 판이 안 나가요. 나는 지금 판이 안나가니까 더 판을 내고 싶어요. 옛날에는 판에 대해 그렇게 열의가 없었거든요.
-들국화가 너무 전설이 돼버렸기 때문에 더 좋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아닌가요?
=처음부터 너무 큰...너무 큰 인기를 얻었죠. 말하자?그런건데, 우리 사운드가 있어야 된다는 얘기죠. 호텔 캘리포니아 같은 경우, 기타 전주가 나가면 사운드가 막 익혀지고. 우리한텐 그런 게 없어요. 난 그걸 연구한 거예요. 지금까지. 전주만 들어도 막 기분이 좋아지는 거, 나 이거 기억해 하면서. 그것까지는 한곡을 만들었어요. <걱정말아요, 그대>라고.
-록커들은 이성관계가 복잡하다, 가는 곳마다 여자들이 달려든다던데요.
=그래요. 아니 근데, 내가 좋아하는 여자는 그렇게 쉽게 없어요. 지금 자유인이 돼서 얘기 막 하는데 우리 와이프까지 다섯명의 여자하고 정말 진한 사랑을 했어요. 어떤 사람은 5년, 어떤 사람은 10년.
-늘 자유롭고 싶어하시는데, 결혼은 구속 아닌가요?
=나는 나를 그렇게 생각 안해요. 나는 소속감을 원해요. 그게 없으니까 반대로 나 나름대로 살려고 하는 거지.
-지금 다들 마지못해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열아홉살 때 어떤 데에서도 날 받아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무작정 설악산까지 걸어 갔어요. 지치고 눕고 싶고, 그런데 한 40분 지나니까 희망이 보이더라구요. 그렇게 한번만 해보세요. 똑같은 산에 올라가는 길. 일루 올라가면 왠지 편하게 올라가게 생긴 길. 그 길로 올라가지 말고 당신이 길을 만들어가라. 그러면 몸에 진땀이 나요. 그 진땀을 흘려보면 아주 즐거워질 거예요.
-이미지나 음악이나 그런 것들은 퇴폐, 방종, 자유인데 성실한 모범생의 철학을 갖고 계시네요.
=모범적이지 않으면 절대 아름다운 퇴폐를 가질 수 없어요. 질서를 모르면 자유를 알 수 없어.
-어떻게 살면 좋을까요?
=자유로워져야죠.
사진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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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장에서 열창하고 있는 전인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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