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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26 16:12 수정 : 2005.05.26 16:12

한울 <한국현대여성사>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라는 조지 오웰의 말처럼, 오래 전부터 역사는 가진 자들의 것이었다. 그의 소설 <1984년>에서, 주인공 윈스턴은 당의 관리로서 역사를 조작하고 그 조작의 증거를 은폐한다. 지배자와 권력자는 자신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과거를 조작하고 조작한 과거를 기반으로 미래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현재 지배당하는 자가 이러한 지배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라진 역사를 복원하는 것, 휴지통에 처박힌 역사의 조각들을 찾아서 이어 붙이는 것, 오직 그것뿐이다.

역사책을 읽을 때마다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역사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성염색체는 XY, 온통 남자, 남자, 남자뿐이다. 이 나라의 절반을 차지하는 그 많던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그녀들의 발자취는 아마 지배자들의 손에 의해 지워지고 버려지고 없어졌던 것이 아닐까. 역사책을 들고 불만스러워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던 시절도 지나고, 이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일상에 찌들어버렸을 때, 때마침 그 버려진 역사의 공백을 메우는 원고가 배달되어 왔다. 그것이 바로 <한국현대여성사>의 원고였다.

한국이란 나라의 현대, 여성, 그리고 역사. 이것들은 모두 만만한 놈들이 아니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거나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이 나라의 현대사. 그 현대사의 소용돌이에서 늘 약자의 자리에 서 있었던 여성들, 이 두 가지를 엮는 작업은 얼마나 고된 노동이었을까. 거기에 여러 곳에서 얻은 귀중한 자료, 구하기 힘든 사진들을 보태는 일은 힘들면서도 보람된 일이었다. 학술이라는 옷을 입고 나온 탓에 비싼 가격이 매겨지고,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책은 ‘한국현대사’를 여성주의적인 관점에서 재조명한 책이다. 여기에서 추구한 ‘역사의 젠더화’란 단순히 기존의 역사 서술에서 배제되었던 여성을 가시화시키고 그들의 공백을 메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보는 눈, 과거를 보는 눈, 미래를 준비하는 눈 자체를 뒤바꾸려는 시도이다. 남성 중심의 현대사 서술에 여성주의 시각으로 개입을 시도하여, 사료 해석에서의 남성 편향성을 극복하려고 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반쪽이 아닌 온전한 역사를 만들고, 과거를 제대로 보고, 현재의 편견을 극복하며,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길이 아니겠는가. 여성을 주제로 다룬 기존의 역사책 중에는 역사적으로 이름 있는 여성의 뒷얘기가 담겨 있거나 뛰어난 여성들의 일대기만을 그려낸 것들이 많다. 그러나 이 책에는 지금까지 역사책에 제대로 등장한 적은 없지만 현대사의 거센 물결 속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해낸 평범한 여성들의 이야기와 경험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국현대사 속에서 생생히 살아 숨쉬는 여성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뿌리를 알아보고, 지금의 한국사회가 가진 여성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들은 각 시기마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주제로 선정했으며, 각 시기의 독특한 시대적 분위기를 포착하려 했다. 또한 정치사나 운동사에만 치우치지 않고 일반적인 여성들의 삶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생활사, 사회사, 문화사의 여러 주제를 균형 있게 다루려고 노력했다. 기지촌의 여성, 한국전쟁과 여성, 한국영화와 여성 등 다양한 주제 속에서 발견한 여성들의 모습은 편집자를 숙연하게 했다. 심지어 가부장제의 수호자로, ‘착한 여자’로만 살아온 것처럼 보이는 과거의 어머니들 역시 얼마나 고된 삶을 살았으며, 독립적인 삶을 꾸려왔는가. 정말 어느 한 부분도 소홀히 넘길 수 없는 역사의 기록이다. 이것을 모르는 것, 그야말로 아까운 일이다. 최아림/한울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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