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26 16:15
수정 : 2005.05.2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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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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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때 일본은 재정과 군사력에서 도저히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데도 왜 진주만 기습을 감행하며 전쟁의 길로 들어섰을까?
독도 귀속과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로 한국에 이어 중국에서 반일시위가 고조됐던 지난 4월25일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 일본에게 과거사 반성을 행동으로 실천할 것을 요구한 중국쪽 주장에 응답자의 71%는 “납득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2차대전 이후, 이른바 전후 일본체제의 근간이 됐던 ‘평화헌법’의 골자인 헌법 제9조 개정이 여야 합의로 올해 말 통과될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다. 헌법개정은 일본 우파 지배그룹이 본격화해 온 ‘보통국가’로의 복귀, 곧 일본 재무장의 토대가 완료된다는 걸 의미한다. 일본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일본의 저명한 서양중세사 연구자 아베 긴야 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가 쓴 <일본인에게 역사란 무엇인가(원제: 일본인의 역사의식)>는 이런 현상의 배경에 전체 일본인의 역사의식 결여가 가로놓여 있다면서 일본 특유의 ‘세켄(世間)’을 그 기저로 지목했다.
일본에서 불미스런 일을 저지른 사람은, 정치가든 기업가든 주부든 그 일에 대해 설명할 때 흔히 “나는 죄가 없다. 그러나 ‘세켄’에 소란을 피워 죄송하다”고 사과한다. 이 독특한 일본식 어법은 영어나 독일어 등 구미어로는 번역할 수 없다. “죄가 없다”고 했으면 그 다음에 “모두가 내 말을 믿어줄 때까지 싸우겠다”는 말이 와야지 사과한다는 말이 와서는 구미인들에겐 해독불능이라는 것이다. 이 어법이 일본적 사유방식, 나아가 역사의식 결여의 근본원인을 밝혀줄 열쇠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유대관계’쯤으로 풀이할 수 있는 세켄은 우리도 쓰는 세간이라는 말과 외형상 비슷하지만 다르다. 산스크리트어의 로카(loka)를 옮겨 적은 이 말의 본래 뜻은 ‘부서지고 부정돼가는 것’이다. 시대와 함께 의미가 바뀌어간 세켄 속 사람들의 행동원리에는 3가지 불변의 원칙이 있다. 증여·상호 보답과 장유유서, 공통된 시간의식이 그것이다. 일본인들은 어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세켄 속에 들어가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회사나 관공서, 대학, 취미활동, 동아리나 동창회 등 모두가 세켄을 이루고 있다. 이 세켄은 일본인 한사람 한사람의 행동을 구속하며 각자 자신이 한 행동의 결과로 세켄에서 배제당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 전체의견과 다른 의견 표현을 주저한다. 세켄 속에서는 언행을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조심스럽고 겸손한 태도를 보여줘야 하고, 옷차림이나 태도도 세켄에 맞춰야 한다. 흔히 말하는 ‘일본적 분위기’의 바탕인 셈이다.
일본인의 관계를 ‘세켄’ 그안에 ‘개인’은 없다
배제당할까 두려워하며 역사적 ‘사실’ 찾기 보다 사실에 관한 ‘평가’만
아베 교수는 <만요슈>와 <겐지모노가타리>, 5세기 후반에서 8세기 말까지의 설화집 <일본영이(靈異)기>를 동원하고 서양 설화집과의 비교분석까지 하며 논지를 편다.
서양에도 세켄적 세계가 있었으나 11-12세기 무렵 기독교 영향으로 주술적 요소가 배제되고, 고해성사를 통해 내면을 응시하면서 ‘개인’이 탄생했다. 이로써 세켄은 해체되고 서구 근대가 시작됐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때 서구 사상을 받아들이면서 1877년에 ‘소사이어티(society)’라는 말을 ‘사회’라고 번역했고 1884년에는 ‘인디비주얼(individual)’이란 말을 ‘개인’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개인이라는 말이 가진 실질적인 내용은 서구의 그것과는 크게 달랐다. 서구에서는 개인이 실체를 갖기까지 수백년이 걸렸으나 수입한 일본제 개인은 세켄이라는 외피 속에 수십년만에 정착했다. 자유민권운동을 억압하기 위해 제정한 1890년의 교육칙어는 제도적으로 근대화된 세계와 세켄이 지배하는 인간관계를 병존케 함으로써 제도와 의식이 따로 노는 ‘이중기준 사회’를 강화했다. 개인이란 말은 존재하나 정작 개인은 없는 셈이다.
개인이 있는 서구사회와 없는 일본사회는 역사서술에서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본에서는 개성있는 역사학자, 역사서술의 출현이 불가능하다. 유럽에서 역사학은 역사적 신화에 대한 투쟁을 위해 존재한다. 역사적 신화란 독일 역사학자 프란티셰크 그라우스에 따르면 “과거를 절대화하고 진리를 구하기 위한 증거를 방기하며, 역사와 자기 자신과의 관련을 찾아내려는 시도”다. 서구의 역사학은 역사적 신화에 대해 역사 사실을 확인하는 일을 사명으로 여겨왔다. 이에 반해 일본의 역사 교과서 문제는 역사 사실에 관한 평가를 문제로 삼는다. 따라서 설사 사실과 관련한 의견대립이 있다 하더라도 서구에서는 학설의 대립으로 학문내부의 문제가 되는데 비해 일본에서는 직접적인 정치적 대립으로 이어진다.
여기에는 학회를 끼리끼리 작당해서 폐쇄적으로 편익을 취하는 배타적 친목모임, 곧 또 하나의 세켄으로 만들어버리는 일본 지식인사회의 행태도 한몫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도 못한다. 워낙 밀착돼 일상사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도 여기서 얼마나 다를까? 이런 상황에서는 역사인식도 비판도 제대로 될 리 없고 무더기로 이리저리 몰려다닐 수밖에 없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각자가 독립적 인격을 지닌 개체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라. 이를 위해 세켄이라는 존재를 각자에게 자각시켜 세켄 속에 유폐된 개인을 해방시켜라. 그러나 이 개인의 해방은 인간에게 패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서구의 기독교적 개인이 아닌 새로운 개인의 탄생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세켄과 맞서 싸워라. 세켄에 잘 적응한 사람은 세켄을 인식하지도 못하며 당연히 그 본질이 무엇인지 알 리가 없다. 적응하지 못하고 싸우는 자만이 세켄의 본질을 알고 역사와 직접 대면할 수 있다. “진정한 역사는 투쟁하는 자에게만 그 모습을 보여준다.” 역사와 직접 대면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밀착된 주변의 세켄을 역사로 대상화하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일체화한 세켄에서 자신을 해방시켜 그것을 대상화하라.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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