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26 16:23
수정 : 2005.05.26 16:23
|
의적, 정의를 훔치다
\
|
‘의적 이야기’는 ‘의적’이 아니라 ‘이야기’에 강세를 둘 수밖에 없다. 의로운 도적이 있든 없든, 그러한 이야기가 우리 주변을 떠돎은 일종의 현실에 대한 은유인 연유다. 사회는 때로 폭력이 아니고는 정의를 이룰 수 없을 정도로 부조리하며, 민중은 친구이자 복수자인 의적 이야기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하여, 전설 속 의적 이야기는 영화와 소설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현대의 도적도 조세형처럼 입에서 입을 거치면서 의로움이 덧칠되기도 한다. 의적 이야기는 민중의 소망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법학자인 박홍규 교수가 쓴 <의적, 정의를 훔치다>도 수많은 의적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저자는 영국의 로빈 후드를 비롯해 러시아 농민반란을 이끈 스텐카 라진, 시칠리아 독립운동체 참여한 살바토레 줄리아노, 멕시코 혁명에서 북부군을 이끈 판초 비야 등에 이어 홍길동 이야기를 한다.
‘착하고 신사다운’ 남자 도둑들 가운데 인도의 풀란 데비는 독한 홍일점. 불가촉 천민 출신인 그는 11살 때 팔려 결혼한 남편한테 시달렸고, 산적한테 잡혀 역시 시달렸고, 또다른 산적한테 시달렸다가, 의적 여두목이 되어 자신을 성폭행한 스물여섯을 살해한다. 의적 10년째 투항해 국회의원을 지내다 ‘보복’ 암살된다.
‘궁극적으로 의적은 없어져야 한다’는 지은이의 말은 그가 도적 이야기를 쓴 속내일 것이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