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26 17:46
수정 : 2005.05.26 17:46
이그나시오 차펠라는 미국의 명문 버클리대학에 생태학 전공 교수로 있는 멕시코 출신의 젊은 과학자다. 그에게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일은 대학에서의 과학연구와 산업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도록 한다. 그는 최근 대학당국을 상대로 종신재직권(테뉴어) 청구 기각에 항의하는 법정 소송을 제기했다. 많은 사람들은 차펠라의 종신재직권 청구 기각이 그가 지금까지 유전자변형작물 반대운동에 앞장서왔던 것과 깊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1998년에 생명공학 거대기업인 노바티스와 버클리대 사이에 체결된 산학협력 협약(노바티스가 버클리대 식물생물학과에 5년 동안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하는 대가로 연구결과에 대해 배타적 접근권을 보장받는다는 내용)은 당시 학내외에서 거센 논란과 저항을 불러일으켰는데, 차펠라 역시 이 협약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이러한 산학협력 방식은 대학의 과학자들을 기업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함으로써 대학의 공공성과 학문의 자유를 훼손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그는 2001년 11월 유명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유전자변형작물 재배가 금지되고 있던 멕시코 한 지역의 토종옥수수에서 유전자변형 옥수수 디엔에이가 다량 발견됐음을 보고하는 논문을 게재하면서 다시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미국의 유전자변형작물이 국경을 뛰어넘어 멀리 떨어진 지역의 농작물까지 오염시킬 수 있음을 암시하는 이 논문은 생명공학 기업들에게 매우 불리한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2년 4월 <네이처>의 편집인은 이미 동료심사를 거쳐 게재된 차펠라의 논문이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밝히면서 그의 연구에 대해 비판하는 글 두 개를 싣는 조처를 감행함으로써 과학계에 파문을 던졌다. 그런데 비판 글을 쓴 연구자들이 모두 노바티스와 밀접히 관련된 기관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았거나 받고 있음이 알려지면서 이들의 뒤에 과연 누가 있는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2003년 말, 관련 대학구성원 대부분이 차펠라에 대한 종신재직권을 추천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당국이 기각하자 다시 학내외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생명공학 기업들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일부 과학자들이 이들에 비판적 활동을 해온 차펠라의 종신재직권 거부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동료교수들과 학생들, 지역사회단체들은 현재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학과 산업의 ‘적절한’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토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과학사회학 leeyoung@catholic.ac.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