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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한 부족의 무당이 악령과 나쁜 기운을 쫓는 ‘쇼바’를 들고 서 있다. 아프리카문화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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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리째 역사가 절멸되고 야만의 문화로 낙인찍힌 곳
그러나 식민 지배자에 대해
끊임없는 저항의 씨앗을 키워왔던 곳
그 아프리카 문화계의 거장들이
한국을 방문해 공통분모를 모색한다
여기서 취업용 상식사전 안에서 화석화된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아프리카인은 인류 최초로 굽은 허리를 곧추 세우고 네 발이 아닌 두 발로 사하라의 풀밭을 넘어(그때 그곳은 사막이 아니었다), 아라비아의 대평원, 툰드라의 유럽, 혹한의 시베리아-알래스카(그때 두 곳은 육지로 연결돼 있었다)를 따라 아메리카까지 걸어나가 인류 최초의 문명을 곳곳에서 일군 주역이다. 그것은 백만년 전의 일만은 아니어서, 인류사에서 가장 빛나는 고대문명을 나일강에서 꽃피운 것도 아프리카인이었다. 유럽이 그나마 체면을 차리기 시작한 로마시대에도 백인들은 아프리카(카르타고) 앞에 벌벌 떨었다. 유럽이 암흑의 중세를 치르고 있는 동안에도, 아프리카는 고유의 문화와 경제체제 아래 나름의 번영을 누렸다. 유럽은 역사적 만행 사죄해야 여기에 질병의 바이러스와 전쟁의 정치를 심은 것은 유럽이었다. 17세기부터 본격화된 노예사냥이 대표적 사례다. 백인은 현지 흑인을 고용해 다른 부족의 흑인을 ‘사냥’시켜 그 값을 치렀다. 각 부족 공동체의 생산기반은 급속하게 노예사냥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부족간 전쟁은 이제 누가 노예가 돼 팔려가느냐의 문제를 둘러싼 것이었다. 그래서 은구기 와 시옹오는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부족간 전통적 반목으로 해석하거나 종교적 대립의 허울을 덧씌우는 것은 아프리카 현실에 대한 의도적 오도이며, 아프리카의 질곡이 사실은 서구 제국주의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서구 언론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말한다. 서구적 근대가 뿌린 재앙에 대한 에이메 세제르의 비판은 섬뜩할 정도로 날카롭다. “아프리카의 역사적 비극은 아프리카가 외부세계와 ‘때늦은 만남’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 ‘만남의 방식’에 있었다.” 그가 쓴 <식민주의에 관한 담론>(도서출판 동인)에 나오는 다음의 글은 아프리카가 한국에게 줄 수 있는 풍부한 함의를 웅변한다. “유럽은 자신이 저지른 잔악무도한 역사적 만행을 인류 앞에서 사죄해야 한다. 유럽은 비겁하게도 자신이 행한 식민사업의 정당성을 특정 영역에서 이룩한 가시적·물질적 성과를 동원해 후험적으로 방어해 왔다. 그러나 비유럽 대륙의 유럽화가 유럽의 발꿈치 아래서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됐을 것이다. 서양은 휴머니즘이란 말을 수도 없이 뱉어냈지만, 단 한차례도 진정한 휴머니즘을 실현한 적이 없었다. 세상을 ‘척도’할 휴머니즘 말이다.” 그러니까 아프리카는 ‘비유럽적 근대’에 대한 고민을 뼛 속 깊이 각인한 땅이다. 프란츠 파농이 “식민지인들이 지배자의 문화에 동화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정신을 저당잡혀야 하고, 반대급부로 그들이 얻게 되는 것은 부르주아 식민주의자들의 사유체계다”라고 했을 때, 아프리카인들은 서구의 근대가 뿌려놓은 자취 전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던 것이다. 이석호 아프리카문화연구소 공동대표는 “서구 근대의 모순이 가장 첨예한 형태로 나타난 제3세계에서 ‘비근대적 발상’을 통해 근대의 여러 폐해와 오류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아프리카는 많은 메시지를 던져 준다”고 말했다. ‘세계체제론’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자본주의적 세계화 비판의 ‘전위’에 서 있는 이매뉴얼 월러스타인이 원래 아프리카 연구자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한국, 아프리카에 대해 무지 특히 ‘아프리카 연합’(AU)은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또다른 참고서가 될 만하다. 유럽연합과 달리 제3세계의 지평에서 국경과 민족을 넘는 지역연합을 도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의 ‘범 아프리카회의’에 뿌리를 둔 아프리카 연합은 1963년 반제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프리카 통일기구’(OAU)를 거쳐 지난 2001년 출범했다. 단일의회·단일통화를 지향하는 기본조약을 이미 43개 나라가 비준한 상태다. 여러 굵직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동아시아가 꿈도 꾸지 못하는 진전을 이룬 셈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대해 한국인이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아프리카는 여전히 ‘세계풍물기행’ 등의 방송 프로그램에서 만나는 별천지 세상일 뿐이다. 지역학 전공자들을 중심으로 한 한국외국어대 아프리카 연구소가 1970년대 이후 관련 연구를 외롭게 끌어오고, 90년대 이후 여러 분야의 소장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아프리카 문화연구소를 만들어 활력을 불어넣고 있지만, ‘아프리카 학자’는 여전히 손에 꼽을 정도다. 김영수 교수는 “‘한국-아프리카 국제 심포지엄’은 서구 중심의 학문과 문화를 통해 한국사회가 정말 발전해 왔는지, ‘비서구적 미래전략’의 함의가 아프리카적 공동체의 이상 어딘가에 있지 않은지를 함께 고민할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심포지엄은 앞으로 2년마다 한번씩 한국과 남아공을 오가며 열릴 계획이다. 그 성과를 토대로 오는 2007년에는 한국과 남아공을 주축으로 ‘제1회 아시아-아프리카 작가 포럼’도 개최한다는 게 이번 행사를 준비한 사람들의 청사진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희망봉을 향한 한국 지식사회의 항해도 덩달아 순풍을 받고 있다. 심포지엄 문의는 (02)577-3153.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꼭 알아야 할 아프리카의 지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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