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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26 19:30 수정 : 2005.05.26 19:30

김찬호/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강의교수 \

“약속과 우연과 재난이 이삿짐처럼 사라진 2003년 서울, 빈손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우리에게, 편의점은 기원을 알 수 없는 전설처럼 그렇게 왔다. …사람들에게 습관이란 구원만큼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서울 사람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뭘까 항시 고민하는 창백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편의점을 지어주었다. 그것은 많이, 그리고 신속하게 생겨났다.” (김애란 ‘나는 편의점으로 간다’ 중에서)

구멍가게가 슈퍼마켓에 밀려나고 그마저 대형할인마트에 위협당하는 가운데 동네마다 속속 들어서는 소형 매장이 있으니 바로 24시간 편의점(convenience store)이다. 70년 전 미국에서 생겨나 1989년 한국에 첫 선을 보인 편의점은 그동안 급속하게 신장하여 지난해 말 전국의 편의점 수는 8300여개, 매출액은 3조6000억원으로 매년 10%이상씩 성장하고 있다. 그렇듯 놀라운 확장의 비결은 무엇인가?

그 경쟁력은 우선 ‘24시간’이라는 영업시간에서 비롯된다. 밤 8시에서 자정 사이에 손님이 가장 많이 몰린다는데, 편의점의 성장은 도시인들의 생활양식 변화와 맞물려 있다. 귀가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앞에 있다. 가장 많이 팔리는 품목이 담배, 삼각 김밥, 소주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일상에서 소소하게 필요한 것들을 편의점은 ‘간편하게’ 조달한다. 뿐만 아니라 공공요금 수납, 로또 판매, 택배, 휴대폰 충전, 팩스, 꽃배달 주문 등 다양한 서비스도 제공한다. 또한 그 안에서 간단한 컵라면 정도를 요기할 수 있도록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는 한국의 편의점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편의점에는 큰 창고가 없는데도 무려 1200-2000여 종류의 물건을 구비하고 있다. 그 비결은? 판매와 재고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POS (판매정보 통합관리) 시스템, 그리고 그 자료에 근거해 주문한 물품들을 각 가맹점마다 신속하고 정밀하게 공급해주는 배송 시스템이다. 말하자면 전국 체인점을 엮는 본사가 일괄 구매하여 유통하는 규모의 경제, 그리고 각 동네에 깊숙하게 파고들어 주민들의 생활물품을 빈틈없이 제공해주는 유연화 전략이 맞물린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구멍가게나 슈퍼마켓, 백화점, 대형할인매장, 그리고 홈쇼핑과도 넉넉하게 겨룰 수 있는 경쟁력의 원천은 거기에 있다.

‘쿨한’ 인간관계 주인 · 점원의 고달픔
24시간 변함없이 거리를 밝히는 불빛은 외로운 욕망을 검색한다

편의점의 또 한 가지 차별성은 매장의 인터페이스다. 우선 환한 조명이다. 명도(明度)의 업그레이드는 소비욕구를 자극하는 고전적인 수법으로서 백화점에서 절정에 달하지만, 편의점은 그 화려함을 일상 가까이에 끌어들였다. 밝은 실내 분위기는 고객을 안심시키는 효과도 갖는다. 여성들도 심야에 망설임 없이 편의점에 들어갈 수 있고, 낯선 손님들이 옆에 있어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구석구석을 환하게 비추는 불빛 덕분이다. 그리고 투명 유리를 통해 바깥에서 내부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어 더욱 안심이 된다.


편의점은 도시문화의 산물로서 젊은이들의 감각에 잘 어울린다. 구멍가게 주인과 달리 편의점의 점원은 출입할 때 간단한 인사만 건넨다. 그 ‘무관심’의 배려가 손님의 기분을 홀가분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특별히 살 물건이 없어도 부담 없이 들어가 둘러볼 수도 있고, 더운 여름날 에어컨 바람을 쐬며 잡지들을 한없이 들춰보아도 별로 눈치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인간관계의 번거로움을 꺼려하는 도회인들에게 적합한 상업공간이다. 이렇듯 ‘익명’의 고객들이 대거 드나드는 편의점에서 ‘단골’이 생기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다.

주인이나 점원이 고객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은 유니폼처럼 표준화되어 있다. 이는 패스트푸드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사회학자 조지 리처가 쓴 <맥도널드 그리고 맥도널드화>에서 ‘각본에 의한 고객과의 상호작용’, ‘예측 가능한 종업원의 행동’ 등의 개념으로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햄버거 가게에서 종업원들이 고객을 대하는 규칙이 매우 세밀하게 짜여 있고, 그 편안한 의례와 각본 때문에 손님들이 매료된다고 보고 있다. 종업원이 누구든 그 외모, 말씨, 감정 등이 예측 가능하기에 고객들은 군더더기 없이 상호작용할 수 있다. ‘쿨’한 인간관계 그 자체다. 그리고 그러한 소통의 효율이 짧은 시간에 많은 손님들을 접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 깔끔함 이면에는 착잡한 괴로움이 있다. 고용 점원들은 아르바이터로서 그들 역시 ‘익명’의 존재다. 그리고 물건을 팔고 배송 물품을 확인하는 단순 노동을 반복한다.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편의점에서 일하며 용돈을 버는 경우도 많다. 편의점 일은 꽤 고단한데, 특히 밤중에 술 취한 손님이 들어와 행패를 부리면 난감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가끔 주인을 잘못 만나면 굴욕적인 일을 겪기도 한다. 5년 전에 개봉했던 영화 <노랑머리2>는 편의점 점원으로 일하면서 연예계를 지망하는 한 여성의 주변부적 삶을 비극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다른 한편 편의점 주인의 사정은 어떤가. 한때 편의점은 잘 나가는 사업 아이템으로서 한 달에 300만원 이상 넉넉히 보장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조기 퇴직자나 부업 희망 주부들이 많이 뛰어들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적자를 보는 가게들도 생겨난다. 본사가 예상 수익을 부풀려 마구잡이로 가맹점을 늘여 사정이 악화되었다는 비판도 들려온다. 그리고 그 계약의 조건이 일방적이고 불공정하다며, 일부 점주들은 본사의 ‘편의’대로 작성된 약관을 시정하기 위해 연대행동에 들어갔다.

‘convenience’는 ‘함께 있음’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왔다. 편의점은 이제 일상의 자연스러운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자기의 방만큼이나 친근하게 느껴지는 그 공간은 우리의 습관을 알뜰하게 빚어낸다. 점원은 물품을 계산할 때마다 구매자의 성별과 연령대를 함께 입력하고 그 정보는 곧바로 본사로 송출된다. 그렇듯 정교한 그물망으로 모니터링된 생활세계에 상품들이 촘촘하게 스며드는 것이다. 24시간 변함없이 환하게 밝혀주는 그 불빛은 도시인의 외로움을 검색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마음의 편의를 찾으려 늦은 밤 온라인을 깜빡이는 이들의 눈빛과 함께 고달픈 세상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글쓴이 소개

1962년 대전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와 같은 학과 대학원 졸업. 기독학생운동에 참여해 <철거민 정착 공동체의 형성과 유지에 관한 연구>를 대학원 석사논문으로 썼고 제정구 의원이 도시 빈민들과 함께 경기도 시흥에 일궈낸 공동체 복음자리 마을을 현지 조사했으며 거기서 박사 논문 주제를 얻었다. 1996년부터 1년 2개월 동안 일본 오사카 대학 객원 연구원.
1989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 강의, 지금은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강의교수. <사회를 보는 논리> <여백의 질서>(공저) 등을 썼으며, <작은 인간> <이런 마을에서 살고 싶다> 등을 번역했다. 서울시대안교육센터에서 부센터장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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