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26 20:52
수정 : 2005.05.26 20:52
‘문학 올림픽’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뜨거운 관심 속에 진행됐던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이 성료됐다. ‘평화를 위한 글쓰기’를 주제로 열린 이번 대회는 국내외 참가 작가들이 27일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을 방문하고 ‘서울 평화선언’을 채택하는 것으로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다. 이제 작가들과 독자들은 5년 뒤로 예정된 제3회 대회를 기다릴 참이다.
공식 개막 전날인 23일 오전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기자회견은 이번 대회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는 일본의 전쟁 포기를 명문화하고 있는 헌법 9조를 지키기 위한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우경화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싸우고’ 있음을 역설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대담을 위해 만난 케냐 출신 소설가 은구기 와 시옹오도 제 나름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의 싸움 상대는 다름 아니라 작가로서 그의 명성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어준, 그의 문학적 모국어라 할 영어였다. 그는 일찍이 1977년에 ‘앞으로 영어로는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그에 따라 자신의 부족 언어인 기쿠유어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제국주의자들의 식민 지배와 그들의 언어인 영어를 구분하는 것이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중국의 망명 시인 베이다오 역시 ‘싸우고’ 있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문화혁명기에 겪은 하방과 정치적 억압에 따른 상처를 안고 16년 동안 ‘표류하는 섬’으로서 해외를 떠돌고 있는 인물이다. 지금은 미국에 머물고 있는 그는 이제 와서는 자본주의 일변도의 세계화에 맞서 ‘싸울’ 가치로서 사회주의적 이상을 재평가하게 됐노라고 토로했다.
‘평화를 위한 글쓰기’를 주제로 조직된 포럼 참가자들이 ‘싸움’을 말하는 것이 일견 어울리지 않아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이 아수라 지옥과 같은 세계에서 평화란 불가피하게 싸움을 수반하는 것이 아닐까. 역시 이번 포럼에 참가한 칠레 출신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가 소설집 <소외>에 수록된 짧은 단편 <비달이란 사나이>에서 인용한 브레히트의 말마따나 “평생을 싸우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은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싸움을 계속하는 이들에 비해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 장 보드리야르는 상대적으로 퍽 한가해 보였다. 원본이 없이, 모든 게 시뮐라크르(복제품)일 뿐인 세상에서 그는 굳이 싸울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추적하기도 힘들고 실재했는지 여부도 불확실한 ‘원본’을 상정해 놓고는, 가령 최악과 차악 사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는 식으로 세계를 ‘쿨하게’ 바라보는 태도에서는 답답함마저도 느껴졌다. 세계화의 폐단을 지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역사가 끝났다’는 식의 언사를 구사하는 그는 비관주의자일까 현실추수주의자일까. 그가 모든 종류의 정치적 실천을 스탈린 류의 교조적 마르크스주의로 치부하면서 ‘냉정한 지성’만을 촉구할 때, 그것은 자칫 선의를 지니고 싸우는 ‘비달’과 같은 이들에 대한 모독이 되는 것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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