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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환/PMC 프러덕션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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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뒷모습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자라난 곳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뮌헨의 11월은 어딘지 모르게 을씨년스러우면서도 적막하다. 마치 오래된 비밀을 간직한 채 느리게 돌아가는 거대한 성 같은 도시. 뮌헨에 도착한 나는 우선 슈바빙으로 향했다. “완벽하게 자유로운 인간처럼 현대 속에 살아 숨쉬는 땅이 슈바빙이다.” 그가 자신의 에세이에서 이렇게 표현했던 슈바빙. 그가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점심식사 대신 즐겨 마셨다던 뜨겁게 끓인 와인. 평소 술을 그다지 즐겨 마시지 않는 나이지만 왠지 그루바인이라는 뜨거운 와인은 꼭 한 번 마셔보고 싶었다. 전혜린이 4년이나 살았다는 슈바빙은 시인, 화가, 작가, 음악가 등의 예술가들이 주로 모여 살던 곳이었다고 한다. 나무가 즐비한 슈바빙의 어느 길가 까페에서 나는 뜨거운 와인을 주문했다. 검붉은 와인이 두터운 찻잔에 데워져 나왔다. 한 모금 마셔보니 후끈하고 온몸에 온기가 돌았다. 그러나 지나치게 두터운 찻잔 탓인지, 아니면 차갑게 가라앉은 11월 뮌헨의 찬바람 탓인지 뜨거운 와인으로는 다 덥혀지지 않는 어떤 한기가 와인 잔을 잡은 내 손끝에 내내 남아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비빔밥과 된장국으로 뮌헨의 찬바람에 지친 속을 달래다 나는 문득, 그 가시지 않는 쓸쓸함 같은 한기의 정체를 보았다. 그것은 향수(鄕愁). 내가 나고 자란 곳에 대한 본능과도 같은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이었던 것은 아닐까. 그도 어쩌면 그래서 이국 땅에서의 4년이란 시간 동안 그렇게 철저히 홀로 된 외로움과 싸우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전혜린의 에세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지금도 가끔 내 삶이 나태해졌다고 느껴질 때마다 꺼내어 보곤 하는 책이다. 내 인생의 지침서까지는 아니지만, 그의 그 치열한 삶의 기록은 내 안에 숨어 있던, 그리고 잠시 일상에 묻혀버렸던 삶에의, 사람에의 그리고 내가 사는 이 땅에 대한 애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아직까지는 별 반 부족함이 없는 듯하다. 이제 시작되는 뜨거움과 빛나는 계절, 여름의 문턱에 발 하나를 걸친 채 나는 또 다시 스산한 늦가을의 냄새가 밴 이 책을 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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