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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02 15:22 수정 : 2005.06.02 15:22

“책방 출입하던 사람이 그짓을 그만두면 죽는다더라. 과부가 되고 싶거든 나더러 책방을 가지 말라고 하라.” 김중렬씨는 집 안에 책이 흘러 넘쳐도 자신만만하다. 필생의 역작을 향한 꿈이 있는 까닭이다. 이정아 leej@hani.co.kr

김중렬씨

40년동안 죽어라 책을 모았다
지금도 오후 2시면 책방으로 ‘출근’한다

김영식씨
책무게만 3t. 아파트가 꺼질까 걱정이었다
건축기사는 더는 안된다고 잘라말했다

허기량씨
이사하면서 한트럭 분량의 책을 버렸다
가슴 한켠이 주저앉는 것 같았다

이덕무(1741~1793)는 어릴 적부터 하루도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그의 방은 동, 서, 남쪽 삼면에 창이 있어, 동에서 서쪽으로 해 가는 방향을 따라 빛을 받아가며 책을 읽었다. 행여 지금까지 보지 못한 책을 대하면 번번이 기뻐서 웃고는 했기에, 집안 사람들 누구나 그가 웃는 모습을 보면 기이한 책을 얻은 줄 알았다.


혜강 최한기(1803-1877)는 서울서 책만 사다 집안 재산을 탕진했다. 그래서 도성 밖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한 친구가 “아예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니, “책을 사는데 서울보다 편한 곳이 있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좋은 책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값을 가리지 않고 사들였다. 그리고 읽은 지 오래되면 헐값에 내다 팔아버렸다.

그로부터 200여년이 흐른 2005년 서울. 텔레비전이 왕왕대고 인터넷으로 무한정 정보가 흘러도, 잉크·종이의 향이 고인 우물에 엎드린 사람들이 있다. 책에 미친 이덕무와 최한기의 후예들이다.

사례 1

김중렬(67·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씨. 재작년 군산대 한문학과 교수를 정년퇴임한 그는 오후 2시면 작은 가방을 메고 책방으로 간다. 남들은 직장에 출근하는 것으로 안다.

허름한 가방에는 두툼한 수첩이 들었다. 거기에는 구입한 책의 목록이 가나다 순으로 정리돼 있다. 얇았던 것이 차츰 불어나 이제는 1000쪽에 이른다. 중국어책, 일본어책, 영인본, 학술지, 석박사 논문으로 나뉘어 깨알같다.

2층 큰 방은 중국어 원서와 한문학 관련 책, 각종 사전류가 가득하고, 평소에는 잠가두는 그 옆방은 한적과 근현대 고서가 쌓였다. 보일러실과 창고를 개조한 지하 서고에는 문학, 역사, 철학 관련 참고 도서들이 빽빽해 개미굴을 연상케 한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틈을 빼고는 천장까지 책이다.

‘몇 권이나 되느냐’는 질문에 한참 뜸을 들이다 결국은 ‘모르겠다’였다. “중국어 책은 1만8600권이오.” 그나마 원서는 중복될까 봐 기록해둔 탓에 권수를 알 뿐이다.

대학원 때부터 책을 모으기 시작했다. ‘시조-당시 비교연구’가 석사논문. 송강의 시조와 가사를 말하려면 그의 문학을 알아야 하는데 대부분 한문으로 되어 있다. 그 뿌리는 중국으로 이어져 있고 문·사·철의 형태로 뭉뚱그려져 있다. “한문, 고대소설, 시조, 가사 등 눈에 띄는대로 40년 동안 죽으라고 모았어.”

성균관대 정문 앞 한옥이 책 무게에 못이겨 방고래가 꺼지는 바람에 25년 전 작정을 하고 이곳 튼실한 집으로 이사했다. 2층을 책방으로 쓰다가 책이 점점 불어나 건축기사가 와보고는 집이 무너지면 어떡하냐고 질겁했다. 일부만 남기고 대부분 지하실로 끄집어 내렸다. 책꽂이를 짜 분야별로 꽂았는데 책들은 자꾸 쌓여 책꽂이를 덮어 버렸다. 아파트가 살기는 좋을 것 같은데 책 때문에 꿈도 못꾼다.

지하실 작은 탁자 옆에는 저술 예정인 <최치원 문학연구> 목차가 걸려 있다. “완벽한 책 한 권은 내고 죽어야지.” 완벽한 책은 없지 않느냐는 질문에 칼만 갈다가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한숨이다.

사례 2

김영식(51)씨. 현직 중견 기업체 이사. 그에게는 한때 서재가 있었다. 사방 벽을 책으로 두르고 가운데 책상을 둬 필요할 때 책을 뽑아보고 단상을 정리하곤 했다. 일과 후 피곤함은 새로움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책꽂이의 책을 책더미가 가리고, 방 한가운데도 책탑이 솟았다. 틈새의 통로조차 안쪽에서부터 차츰 채워져 이제 그방은 책 창고가 됐다. 책은 넘쳐 거실 벽에 퇴적되고 이제는 딸의 방까지 범람했다.

책 1만권이 3대를 대물림하면 학자가 나온다는 믿음을 가진 그가 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면서부터. 전공에서 시작한 책탐은 문학, 역사, 신학 쪽으로 확대됐다. 10년 전 이곳 아파트로 이사할 때 두 트럭 이삿짐 가운데 한 트럭이 책이었다. 이삿짐센터에서 “책은 돌덩이”라면서 돈을 더 내라고 해 웃돈 주어야 했다. 지금은 그 두 배쯤 돼 1만권쯤 된다. 대물림 목표치에는 이른 셈이다. “지식욕으로 포장된 소유욕인지도 모르겠어요.”

책 한권을 300g으로 치면 책 무게가 3t. 아파트가 무너질까 봐 고민이었는데, 건축기사의 자문을 받은 결과 튼튼한 옛 아파트라 그 정도는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 더는 안된다는 단서가 붙었다.

자신은 그렇다 쳐도 아내와 딸한테조차 불편을 강요하는 게 미안해 얼마전 책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렇게 해서 300여권을 버렸다. 주로 소설책이다. 모아들이기만 했지 버리기는 처음이다. 책을 살 때와 달리 버릴 수 있는 게 꽤 될 터이다. 그렇지만 펼쳐놓고 선별할 공간도 시간도 안된다. 정리를 해도 책더미의 거죽에서 할 뿐이다. 그래서 겨우(?) 300권이다.

책방을 거르면 허전하기는 전과 다름없지만 요즘은 책 사는 것을 절제한다. 빈 손으로 책방을 나설 때가 잦다. 그는 책사기를 절제한다기보다 책 둘 공간을 아낀다고 표현했다.

그는 단독 주택이 꿈이다. 지하에 서재를 꾸며 그전처럼 다시 책을 꺼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시외로 나가면 될 듯하나 아이 교육 때문에 당장은 힘들다. 희망사항으로 그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이 잠시 어두웠다.

사례 3

허기량(60·서울 은평구 갈현동)씨. 축협 중앙지점장을 퇴직하여 부동산업소를 운영한다. 그 건물 30여평 지하에는 풀다만 책뭉치가 쌓였다. 다섯 트럭(2t) 분량이다. 이태 전 집에서 옮겨오면서 한 트럭을 버렸다. 가슴 한켠이 주저앉는 것 같았고 지금껏 살아온 삶 자체가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아내는 책이라면 질색이다. 그 앞에서 책을 사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 몇 번인지 모른다. 지키지 못할 약속임은 피차 알았다. 책을 사면 헐렁한 윗옷에 숨겨 들여가고, 숨길 수 없는 양이면 아내가 교회를 간 틈을 노렸다.

요즘도 점심식사 뒤면 운동삼아 근처의 헌책방으로 간다. 물론 어김없이 책 한두 권이 손에 들려 책더미를 불린다. 어쩌다 아내가 지하실에 들르면 눈길 안준 동안의 증가분은 금방 표가 난다. 허씨는 저쪽 것을 이쪽으로 옮긴 거라고 둘러대고 아내는 속아준다.

언젠가 한 트럭을 버리고 뭐하러 또 사느냐는 책방 주인 말에 “어느 것은 보는 재미, 어느 것은 읽는 재미, 어느 것은 만지는 재미”라고 답했다.

그의 책 욕심은 고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함께 기거하는 친구의 아버지가 자취방에 들르면 “학교 다닐 때 책을 많이 사서 읽어야 한다”면서 돈을 주고 가는데 그것이 엄청 부러웠다. 자신의 아버지는 여순사건 때 돌아가셔서 얼굴도 모른다. 1975년 상경하면서 그의 책갈증 해소가 시작됐다. 신간안내를 보고 책 제목을 수첩에 적어두었다가 헌책방에서 눈에 띄는대로 사고 소원을 이룬 것은 줄을 그어 지웠다.

“한 권 값이면 서너 권을 살 수 있잖아요. 게다가 잘하면 보물을 건지기도 하고요.”

지금은 썰렁한 지하를 서재로 꾸며 음악 틀어놓고 책 읽으며 글씨 연습하고, 때로 뒷산을 거닐며 사색에 잠기는 꿈을 꾼다. 그러나 부부싸움 때 책이 단골 시비다. “내가 깔려 죽어야 책을 안 살 것”이라는 말이 나올 쯤이면 말다툼은 사실상 남편의 판정패다.

이들은 △들이기만 하고 버리지 못한다 △책 이외에 취미가 없으며 술·담배를 하지 않는다 △남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논다 △자기 노출을 꺼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책을 빌려주지도 빌리지도 않는다 △책 자랑을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책 사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 외에는 자린고비다. 허기량씨는 자신의 책은 술 안 마시고, 담배 안 피고, 택시 안 타고 하면서 용돈 아껴서 구입한 거라고 말했다. 신영길(82·경기도 고양시) 장서가협회 명예회장은 “제주도, 설악산은 물론 남산도 구경 못했고 가까운 인천도 안 가봤다”면서 그런 데 쓸 돈이면 책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빼놓을 수 없는 또다른 특징은 ‘책을 빼서 보았으면’ 하는 소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보지 못해도 언젠가는 볼 것이라며 책을 산다는 뜻이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책 중독’. 책을 읽지 않으면 공허하고, 책사기를 거르면 안절부절이다. 처음에는 스스로 책을 가까이했으나 중독 이후에는 책이 그의 성정과 일과를 지배한다.

이렇게 책에 미친 사람들이 고령화하고 차츰 줄어드는 추세다. 헌책방인 대양서점 주인 정종성(63)씨는 “단골 대부분이 50~60대”라면서 30~40대는 드문 편이라고 말했다. 나이드신 분이 다녀간 지 오래면 전에는 걱정이 돼 전화로 안부를 묻곤 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귀띔이다. 언젠가 건강이 어떠신지 물었다가 “그 양반 돌아가셨어요”라는 답을 듣고 당황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책은 소리소문 없이 흩어지기 일쑤.

출판인 윤형두(70)씨는 행복한 경우다. 양보다는 질이라며 굳이 장서의 수를 밝히지 않는 그는 파주에 200여평 희귀본 전시관, 마포에 20평 출판자료관을 준비하고 있다. 신영길씨는 1993년 평생 모은 장서 6만여권을 광운대에 기증했고 대학쪽은 별도의 문고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이들과는 달리 덜 알려진 책 수집가들의 책들은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평생에 걸쳐 일정한 안목으로 수집된 장서는 희귀성이나 자료가치는 물론이거니와 한 개인과 그가 살아온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패총과도 같다. 이들은 분신과도 같은 장서를 염려한다.

김중렬씨. “자치단체에서 조금 신경쓰면 피차 좋을 터인데….” 허기량씨. “대학도서관에서는 달가워하지 않는다던데….”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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