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02 17:04
수정 : 2016.04.2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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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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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기사 서봉수는 1972년에 명인 타이틀을 땄는데, 당시로서는 최저단(2단), 최연소(19살)라는 기록이었다. 1970년대 초반이라는 시점은 정치적으로는 박정희가 유신체제를 통한 장기집권을 꾀하던 시절이었고 연예계에서는 요즘 할머니 역으로 나오는 윤여정이 장희빈 역할을 하던 때였다. 서봉수의 타이틀 획득은 당시로서는 매우 충격적이어서 기전을 주최한 신문의 일면 톱을 차지했다고 한다.
오늘날 한국 바둑을 대표하는 기사는 이창호지만 한국 바둑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전형적인 기사를 대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서봉수를 꼽고 싶다. 잡초류, 배고픈 야수, 야성의 표범, 야전 사령관, 야생마, 오뚝이, 토종바둑, 된장바둑--그의 스타일을 나타내는 표현들이다. 서봉수 등장 이전까지 한국 바둑의 정상 자리는 일본에 바둑 유학을 다녀온 기사들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국내파인 서봉수에 의해 그런 전통이 깨진 것이다. 이러한 별명들은 실전적이고 전투 지향적인 그의 기풍을 나타내고 있고 동시에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한국 바둑의 특징과도 대체로 일치한다. 서봉수 자신은 자기의 기풍을 굳이 음식에 비유한다면 구수한 된장보다는 매운 고추장이 더 어울린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바둑을 두는 것 자체가 치열한 전쟁터를 방불케하므로 그렇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국 바둑을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은 조훈현, 유창혁, 이창호, 이세돌과 같은 천재들이지만 이러한 천재들을 낳은 바탕에는 각 기전 검토실에서의 집단적 지성이나 부모의 바둑 교육열 등에서 분명히 확인되는 바 한국 사회 특유의 역동성이 깔려 있다. 지난 월드컵에서도 확연히 드러난 바 있는 이러한 역동성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우리 근현대사에 있어서 객관적 상황에 대한 주체적 대응의 문화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실전적인 역동성이라는 점에서 서봉수가 한국 바둑을 대표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바둑은 체력이 승패 갈라
바둑은 머리로 하는 게임이자 스포츠인데 한번의 게임을 하는 데 시간이 상당히 걸리므로 결국 체력과 나이가 문제가 된다. 또 텔레비전과 인터넷의 영향으로 한 판의 바둑을 두는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더 짧아져 가는 게 요즘 추세다. 속기에서는 순발력이 중요하고 중반 이후의 전투에서는 집중력이 중요한데 이게 다 체력과 나이와 관련이 깊다. 요즘 최정상급 기사들은 대개 십대 전반에 프로가 되고 이십대 전반에 타이틀을 딴다. 올드팬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오십대의 기사들은 십대와 이십대의 젊은 기사들을 당해내지 못한다. 세계 최강 이창호도 서른을 막 넘긴 탓인지 성적은 들쑥날쑥이다. 후배 기사와의 대결에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장면에서 쉽게 응수하고 버틸 수 있는 장면에서도 타협을 하는 경향이 있고 투지나 승부욕이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이창호와의 대결에서 국수 자리를 따낸 최철한의 평가다.
그렇다면, 이미 오십줄에 들어선 우리 서봉수의 사랑과 결혼은 어떤 식으로 결말을 볼 것인가 하는 점이 아주 궁금해진다. 냄비처럼 쉽게 달궈지고 쉽게 식는 특성을 보이는 한국에서는 나이 먹은 세대가 사회 안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말이 드러내듯이 특히 IMF 구제금융 이후로 신자유주의 체제는 산업 현장에서의 퇴출 연령을 점점 더 아래로 깎아 내렸다. 퇴출당한 많은 사람들의 경우 비록 몸이 예전과 달리 말을 듣지는 않지만 일에 대한 의욕만은 젊은 세대 못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나이 먹은 사람들은 대체 어디에서 인생의 승부수를 찾아야 한다는 말인가.
여기서 굳이 바둑 용어를 쓴다면, 개개인의 노력과 같은 부분 전투도 중요하지만 사회 전체에서의 ‘형세 판단’이 더 우선적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누구든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서럽고 쓸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면에 독일 언론인 프랑크 쉬르마허가 고령사회 문제를 다룬 책에서 말했듯이 “우리의 사명은 늙는 것이다. 다른 사명은 없다”. 그러니 비록 늙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 혹은 잘 하는 일을 계속 해나가면서 즐기면 되는 것이다. 요컨대 한국 사회 전반의 역동적 분위기라는 것을 나이와 관련된 영역에서도 확장해가는 일이 중요하다. 이것은 사회보장이나 사회안전망과 같은 제도를 잘 디자인하는 것 못지 않게 시급한 사회적 과제다.
좋은 제도가 만들어지고 더 나아가 굳이 나이를 문제삼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나머지는 각자 하기에 달린 것이다. 바둑에서 예를 찾자면 얼마든지 있다. 일본의 경우 구토 노리오 9단은 59살에 천원전을 차지했고 후지사와가 왕좌 타이틀을 따낸 것은 66살이었다. 사카다는 80살이 되어서야 은퇴를 했고 1942년생인 린 하이펑은 아직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얼마 전에 별세한 김수영 7단은 췌장 암 판정을 받고서도 죽기 전까지 공식대국을 7판이나 두었다. 좌탈입망의 감동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늙어도 좋아하는 일 즐기자
이미 십년 전에 서봉수는 자전적 글에서 밝혔다. “나는 결코 승부욕이나 바둑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 승부란 늘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굳이 팬의 입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나이를 먹어서도 바둑 수가 늘기도 한다는 서봉수의 말을 믿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니 나는 단단히 결심을 한다. 만에 하나 윤여정이 조인성이나 에릭과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듣더라도 나는 결코 놀라지 않을 작정이다. <자본론> 제1판 제1권의 서문에서 맑스가 인용한 단테의 말을 서봉수는 물론이고 늙어 서러운 모든 한국인에게 선사하고 싶다. “제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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