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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에 무뎌지는 역사 반성 ‘야스쿠니’ 참배 논란은 계속 |
패전 뒤 도쿄 전범재판에서 ‘A(에이)급 전범’ 판정을 받고 처형당한 도조 히데키의 손녀가 지난 5일 <후지 텔레비전>에 나와 한 얘기가 새삼 사람 착잡하게 만들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논란 해결책의 하나로 제시되고 있는 전범자 분사를 그의 가문이 거부하는 이유는 이랬다. “극동 국제군사재판(도쿄 전범재판)은 승자의 일방적인 재판이어서 납득할 수 없다. A급이니 B급이니 C급이니 하지만 편의상 연합군이 재판 때 갖다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재판사관을 인정하는 것은 저 전쟁이 침략전쟁이었음을 인정하는 게 된다.”
<후지 텔레비전>이 극우 <산케이신문>과 같은 계열이고 역사교과서 왜곡논란의 진원지인 출판사 후소사로 그 끈이 바로 연결되며, 그리고 그가 전범 유족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이건 그야말로 ‘막가는 것’이다. 일본사회가 지금 어느 지경까지 가 있는가.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해온 <아사히신문>이 5일 ‘야스쿠니 참배, 유족에 답합니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 “저 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친 사람을 애도하는 것이 왜 잘못인가? 총리가 참배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그리고 “<아사히>는 중국의 반일(주의)에 영합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유족과 독자 여러분”의 질타에 대답하는 내용이다. 오죽했으면 이런 사설을 썼을까.
독일 공공방송 와 일간지 <디 벨트>가 지난 3월 18살 이상 성인 1천여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한 결과, ‘홀로코스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유대인 대량학살’이라고 제대로 답한 비율이 전체 평균 82%였지만 연령별로는 25-29살이 68%, 24살 이하는 51%에 그쳤다고 한다. 독일은 전후 60년인 올해도 수도 베를린 중심가의 1만9천㎡ 부지에 대규모 ‘홀로코스트 기념비’를 마련하고 10일 슈뢰더 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행사를 열었다.
이처럼 끊임없이 전쟁범죄를 상기시키고 사죄와 배상을 계속해온 독일조차 그럴진대, 텔레비전에 출연해 침략전쟁이라는 누명(?)은 강요당한 허구라고 공언해도 아무 탈 없는 나라의 젊은이들이 인근 아시아인 수천만명을 대량학살한 자국의 그때 만행에 대해 몇%나 제대로 알까.
외상을 지낸 고노 요헤이 중의원 의장이 지난 1일 전임 총리 5명과 만나 “작금의 일-중, 일-한 관계의 급속한 악화는 간과할 수 없다. 큰 원인의 하나가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다”라며 사실상 참배 중단을 요구한 이래 자민당 안팎에서 참배 반대 기운이 드세져 고이즈미 총리 고립 심화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런 참배 비판마저도 역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주변국 달래기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염두에 둔 책략 차원에 그치는 것인지, 생각하기도 피곤하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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