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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09 17:45 수정 : 2005.06.09 17:45

‘북한 핵문제’의 진실은 무엇인가? 왼쪽은 지난 5월9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내보낸 것으로, 북한 유치원생들이 조지 부시 미 대통령 사진에 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 오른쪽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현상수배한 듯이 패러디한 미국 인형극 영화포스터. 연합


늑대와 양치기 소년의 이솝우화에서 양들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 때문에 희생당한다. 그러나 늑대가 왔다는 양치기 소년의 마지막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피해는 양치기 소년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몫이거나 양들의 죽음으로 나타난다. 양치기 소년만을 탓할 일이 아닌 것이다. 북한은 핵이 있다고 말하는 양치기 소년처럼 보인다. 북한의 핵보유 내지 핵억지력 주장은 양치기 소년의 말로 간주되고 있다. 한국과 미국 등 마을사람들은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게 인정하지 않으려는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양들은 생명의 위협 앞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양치기 소년의 마지막 말이 진실이었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북핵 위기의 본질을 말해준다.

팔리 모왓은 이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양과 늑대의 이분법에 문제를 제기한다. 현존하는 캐나다 최고의 작가이자 자연학자로 평가받고 있는 그가 쓴 <울지 않는 늑대>를 보면 늑대는 기존의 괴기와 공포가 가득한 이미지가 아닌 야생의 늑대다. 그는 이 야생 늑대를 오랜 시간 ‘늑대의 눈’으로 관찰했다. 거기서 늑대는 자연의 일부분으로서 자신만의 생존방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리고 인간의 잔혹한 사냥 때문에 제대로 항의 한번 못하고 절멸해가고 있다. 이솝우화가 상징화한, 그래서 상식이 된 인간의 곡물과 가축을 갈취하는 야수로서의 늑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늑대가 포악하며 무자비한 킬러라는 것은 가공의 이미지다. 모왓은 그것이 우리가 던진 우리 스스로의 ‘그림자’라고 말한다.

이솝 우화가 고착화시킨 늑대의 이미지를 뒤집어 제대로 보는 것은 핵문제를 바라보는 기존 통념에도 적용된다. 북핵을 늑대로 보는 단순 논리 말이다. 북핵 문제에서는 양치기 소년의 우화와 그 뒤집어 보기 모두 필요하다. 거짓말하는 양치기 소년과 착한 마을사람들, 착한 양과 사악한 늑대의 이분법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양들의 죽음을 양치기 소년의 문제로만 보지 않듯이 핵문제를 북한의 6자회담 거부로만 봐서는 안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국 대사와 제이슨 샤플린 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케도) 정책고문은 지난 4월27일 <인터내셔널 헤럴드트리뷴>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질문했다.

미국의 ‘변덕’ 상황 더 악화

“미국 대통령이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을 세 ‘악의 축’ 국가 중 하나로 규정한다면? (다른 두 나라는 이라크와 이란이다) △당신에 대해 선제공격을 허용하는 예방전쟁 전략을 추진한다면? △이런 전략을 사용하여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진 이라크를 침략하고 그 지도자를 몰아낸다면? △(유럽 우방국들의 노력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핵 프로그램이 당신보다 훨씬 못한 이란-다른 ‘악의 축’ 국가-을 포용하길 원하는 유럽 우방국들에 동참하기를 거부한다면?” 그 답은 이렇다. “김정일은 무자비하고 비윤리적일지 모르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다. 그는 여느 지도자가 자신과 국가의 존속을 보장하기 위해 할만한 그런 행동을 해왔다”.


김정일위원장 비윤리적일지 모르나
지도자로 국가 존속 위한 행동 해왔다
‘북핵’ 주요 안보위협으로 부풀린 채
미국이 해법 안 내놓는 것이 쟁점
‘늑대-양’ 식 이분법 현실엔 없다

게다가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북한 만은 아니었다.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북한이 보내는 신호의 의미를 찾는데 지쳤다고 말했지만, 부시 행정부는 북핵 문제에서 모순되고 헷갈리는 신호를 보내왔다. 워싱턴의 분열된 정책 방향이 북한의 6자회담 불참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예컨대 딕 체니 미 부통령은 5월30일 미 <시엔엔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공격했다. 그러나 체니의 강경발언 바로 다음날인 5월31일 조지 부시 대통령은 전혀 다른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체니는 김정일이 “자기 민족을 전혀 돌보지 않고 있으며”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만드는 데에만 신경 쓰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무책임한 지도자”라고 비난했다. 미국은 5월25일부터 △한국전 미군 유해 발굴 중단 △스텔스 F-117A전폭기 15대 배치 △찰스 카트먼 케도 사무총장 연임 거부 등 일련의 강도 높은 대북 압박 조처를 취했다. 체니의 발언은 그 연장 선 상에 있었다. 실종미군 수색작업은 북한내에서의 국방부의 유일한 작전이자 북한 군부와의 유일한 접촉창구였다. 미 국방부 대변인은 유해발굴 중단이 북한의 회담불참으로 생길 ‘불확실한 상황에서 미군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암시적으로 말했다. 또 국방부 관리들은 F-117A의 배치는 훈련의 일환이라고 아무 일도 아닌듯 말했다. 그러나 ‘스트라이크 이글’이라는 별칭이 말해주든 스텔스 전폭기는 강력한 선제공격 무기다. 게다가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F-117은 모두 55대, 그 3분의 1 정도의 전력이 한국에 배치된 것이다. 북한은 이를 ‘전쟁의 전주곡’이라고 비난했다.

정권교체냐, 핵 억지력 확보냐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맨스필드 태평양연구소의 고든 플레이크 소장은 “미국은 북한에 득이 되는 모든 것에 빗장을 잠그고 있다”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가 지금까지 중국에 주로 의존하던 6자회담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략을 찾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31일 백악관에서의 기자회견에서 “외교든, 군사든 둘 중 하나인데 나는 외교적 접근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놓여 있으나 우리는 외교적 해결방법을 갖고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또 유해발굴 중단이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지시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해발굴 중단은 ‘폐지’가 아니라 ‘재평가’라면서 유해 발굴 노력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체니와 럼스펠드는 군사력 동원과 압박을 원하지만 자신은 외교적 해법을 지지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는 특히 이 자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미스터 김정일’로 호칭했다. 이 발언은 3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긍정적인 반응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불과 1달 전인 4월28일 기자회견에서 김정일을 폭군이자 국민을 굶기는 사람, 위험한 인물로 낙인?은 건 체니가 아니라 부시 대통령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부시 대통령은 5월28일 해군사관학교 졸업식 치사를 통해 테러리스트들과 폭군들이 무고한 백성들 뒤에서 숨어지낼 수 없도록 국가가 아닌 정권을 공격 목표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시대의 전쟁에서는 미국은 국가가 아닌 정권을 겨냥할 수 있으며 그것은 테러리스트들이나 폭군들이 더 이상 무고한 백성들 뒤에 숨어 안전하게 권력을 유지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보수적인 견해를 대변해온 <월스트리트 저널>의 자매지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이 지난 3일 인용한 아시아 외교관의 말은 정곡을 찌른다. “북핵 문제에서 쟁점은 미국이 그것을 주요 안보위협-실제 그렇지만-으로 부풀려 놓고 막상 그에 대해 어떻게 하겠다는 명확한 계획을 내놓지 않는 데 있다.” 또 다른 외교관은 “강제적인 정권교체가 목표가 아니라면 북한이 진정 원하는 것, 즉 모종의 안전보장을 제공하는 게 무슨 해가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것이 지난 2월10일 북한의 6자회담 불참 이래 4개월간 계속되고 있는 북핵 위기의 또 다른 단면이다. 북핵 위기는 악의 축에 이어 폭정의 전초기지를 내세운 부시 2기의 정권교체 전략과 북한의 핵억지력 확보가 충돌하고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리처드 하스 외교협회 회장은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즈> 7·8월호에서 “지금까지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 이란의 도전을 정권교체를 통해 해결하기를 선호하는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시의 비판자가 아니다. 그는 1기 행정부에서 외교정책의 기본방향을 입안하는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6자회담이 정권교체 전략의 명분일 뿐이라면 북한이 6자회담의 재개에 앞서 폭정의 전초기지 철회를 요구하며 회담 장 바깥에서 핵 억지력 확보를 주장하고 있는 것만을 탓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북한의 6자회담 불참을 냉정한 이해득실의 관점에서도 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6월의 3차 6자회담까지를 보면 미국은 과연 협상의지가 있는지를 의심받았다. 좋게 보면 미국(일본) 대 남북한·중·러였다. 결국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CVID)라는 용어를 고집하지 않기로 했고, 선핵 폐기도 전면에 내놓지 않는 걸로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난 2월10일 이래 이런 구도는 역전돼 지금은 5 대 1로 북한을 압박하는 모양새가 됐다. 그렇다면 북한은 손해보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북한은 6자회담 불참을 내세워 핵보유를 정당화하면서 이른바 ‘핵무기고’를 늘려왔다. 흥정에 비유하면 물건 값은 계속 올라가는 데 미국은 이렇다할 대책을 못내놨다. 게다가 부시 행정부는 핵확산방지 정책이 실패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북-미 직접대화의 요구도 커지고 있다. 물론 그 손익계산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6월, 이제 그 결산을 해야 할 때가 온 듯하다.

강태호 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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