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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량소비사회 ‘포드자동차’ 시동걸다 |
1903년 6월16일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후손 헨리 포드(1863-1947년)는 11명의 투자자들과 함께 ‘포드 모터 컴퍼니’를 창설했다. 기계공 출신 포드의 탁월한 자동차 제조·개량 기술에 기댄 자본금 2만8000달러의 이 회사는 20세기의 산업지형을 뒤흔들고 나아가 세계인의 소비 및 생활양식을 바꿔버린 ‘포드주의’ ‘포드생산방식’ ‘포드혁명’의 진원지가 됐다.
포드혁명 주역은 1908년에 나온 ‘모델 T(티)’였다. 컨베이어 시스템에 의한 분업형 연속일관생산체제 아래 대량생산되기 시작한 ‘모델 티’ 승용차는 기존 자동차에 비해 저렴한 가격에 폭발적으로 팔려나갔다. 내연 자동차를 처음 만든 곳은 독일이었으나 이를 키우고 대중화시킨 결정적 공헌자는 포드였다. 미국은 그 덕택에 그때까지 부자들의 노리개였던 비싼 소량 주문생산방식의 자동차들을 밀어내고 싸고 규격화한 대중용 자동차들을 양산함으로써 사상 처음으로 자동차 대중화시대를 맞았다. 1918년까지 미국이 보유한 자동차의 절반은 모델 티였다. 이 모델은 미국과 전세계에 1500만대 이상 팔려나갔다. 포드의 대량생산방식은 다른 공업부문 생산에도 응용돼 20세기 공업사회로의 길을 열었다.
포드는 당시로서는 드문 하루 8시간 노동에다 일당 5달러라는 파격적인 고임금제를 실시함으로써 노동의 질을 높이고 숙련노동자들의 이탈을 방지했으며, 투자 이익금을 공유하는 계획까지 세웠으나 노동조합 결성만은 한사코 막았다. 복제품의 대량 일관생산뿐만 아니라 표준화한 대량소비 또한 포드혁명의 특성이었다. 극단적인 분업으로 직무를 파편화하고 기계장치에 노동을 종속시킴으로써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대신 받은 임금으로 노동자들은 역시 대량 복제생산된 각종 내구소비재와 주택, 자동차 등을 사들였다. 대량소비사회가 출현한 것이다.
그러나 포드는 성공한 티형 모델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자동차 보유가 일반화하면서 이제는 다양한 모델을 요구하고 있던 사회변화에 부응하지 못했고 신용판매 등 새로운 판매방식 도입도 거부함으로써 제너럴모터스(GM)에 자동차제조업체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포드가 새 모델 ‘A(에이)형’을 내놓은 것은 1927년이었다. 최근에는 일본 도요타에게 2위 자리도 내주었으나, 일본 마쓰다 등 국내외 산하업체들을 포함한 광의의 ‘포드 그룹’ 차원에서는 여전히 2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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