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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시는지? 지난해 <문화방송(MBC)> 방송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둥글게 둥글게’ 춤을 추며 상을 받던 그 작가. <안녕, 프란체스카>는 그 작가, 신정구(34)씨의 작품일 수밖에 없다. 그 정도로 자기검열 없고 엉뚱할 능력 있는 인간의 머리가 아니라면 도저히 튀어나올 수 없는 대사와 ‘시추에이션’들의 진열장이기 때문이다. <안녕, 프란체스카>가 흡혈귀 버전의 리얼리즘극으로서 대학교재로 채택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드라마라면, 신정구씨는 인간의 형상을 한 판타지의 덩어리로서, 삶의 교재가 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은, 작가는 때로 이런 공정을 거쳐 생산된다는 가치 있는 사례연구가 될 것이다. 공상과 몽상 (음, 그 둥글게 춤? 추면서도 내가 지금 모하는 거지? 생각했다. 미리 준비했다면 더 잘했겠지. 전년도 수상자가 다음해 시상자로 나서는 전통이 있지 않나. 그래서 올해엔 무용단을 데리고 나갈까 생각중이다.) 나는 생각의 나라에서 살았다. 대여섯살 때 취득한 생각의 나라 국적, 현실세계에 표류해온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산다. 포기하다니. 사나흘씩 밤 새고 죽을만큼 피곤할 때에도, 공상 속에서 뒹굴면서 현실을 각색하고 바꿔보지 않고서는 못 잔다. 나를 생각의 나라로 안내한 건, 사이가 무지 나빴던,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장남이자 모범생인 세살 위 형. 초등학생이던 형이 혼자서 킬킬대는 모습을 보고 “왜?”냐고 물었다. “생각의 나라를 여행중”이라는 답. 어떻게 가는 건데? 알고보니 차표도 필요없었다. 그 대답은 작가 신정구의 줄기세포가 배양될 배아였는지도 모른다. 드라마를 볼 때도, 쓸 데 없는 생각 많이 한다. 여주인공이 엄마랑 싸우고 문을 쾅 닫은 뒤 뛰쳐나간다 치자. 그럼 대개는 뛰어가는 여배우의 뒷모습을 멋지게 잡고난 뒤 끝난다. 그런데 난 뛰어가다가 다리 아파서, 또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지갑은 들고 나갔을까? 지갑이 없으면 어떻게 할까? 끝도 없이. 그런 식으로. 음악
음악으로 먹고 살게 될 거라 생각했을 정도로, 일찍, 뜨겁게 음악에 빠져들었다. 물론, 아! 비틀즈! 중학교때부터 자는 시간 빼놓고 음악을 들었다. 왕따나 사고뭉치는 아니었지만, 음악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아이가 되어갔다. 공부는 안했다. 하지만, 나름대로 한 우물 파고 들면서, 다른 아이들은 유치해, 하는 은근한 우월감을 갖고 살았다. 잘난 척한 댓가는 물론 비쌌지. 명문 사범대 수학과에 정원미달로 합격했지만 인수분해도 못하는 내가 버틸 수 있을까? 포기했다. 재수 끝에 전문대 도예과에 제2지망 쓰리쿠션으로 입학했다. 부모님에 대한 생각으로 잠시 거룩해졌던 4, 5일을 빼놓곤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흙 한번 만져본 적 없다. 맞다, 그래서 고졸이다. 잔소리 없던 부모님마저 막내를 포기한 이 즈음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음악 듣고 술 마시고 여행 다니며 ‘함부로’, ‘무책임하게’ 살았다. 알바 스물두살 때 서울로 올라와서 하루 한끼 먹는 6년여의 알바 생활을 시작했다. ‘이렇게 생겨서 죄송한 얼굴’과라서 호스트같이 얼굴 파는 일을 제외한 모든 것을 했다. 중국집 배달원, 카페 홀 서빙, 일식집 종업원, 백화점 직원, 생수 배달원, 옷가게 판매원, 보험 외판원, 음악다방 디제이(DJ)…. 쥐꼬리 월급 받아 남는 돈은 거의 시디(CD)사는 데 썼다. 그러다 돈 떨어지면 한 장에 1만5천원 주고 산 CD들을 중고가게에 3, 4천원씩에 내다 팔고. 한때, 빛이 보였다. 음반회사에 7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것이다. 곡을 쓰고 가사를 쓰면서 한동안 우쭐했다. 그러나 월급을 주지 않았다. 늘 배가 고팠다. 이외수의 <들개>는 바로 내 얘기였다. 도둑질은 물론 쥐라도 잡아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리봉동 자취방 골목 옆에는 삼립식품 공장이 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는 담을 넘어 빵을 훔쳐먹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스물여덟살 때, 서울 생활을 포기하고 대구 집으로 내려갔다. 이때의 감성, 버릴 수 있을 것같지 않다. 판타지 덩어리‘안녕, 프란체스카’ 작가 신정구
알바 6년, 수입품 가게 운영 지칠 무렵
벼락치기 대본 ‘세친구’ 작가 모집 합격
려원이 말하기에, 상처받으면 죽니, 했다” 방송작가 나이키는 어렵고 프로스펙스쯤은 어찌어찌 사줄 수 있는 정도의 집안형편에도, 부모님이 작은 가게를 얻어주셨다. 수입품을 파는 가게에서 멍하게 있다보면, 하루에도 1억번씩 자살하고 싶었다. 스물아홉, 희망도 미래도 없었다. 세상의 어떤 좋은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던 그때, 아는 형이 “네가 부럽다”고 했다. “하느님이 널 어떻게 써먹으려고 그렇게 많은 어려움을 주시는가”. 그 종교적인 말이, 묘하게 위안이 되었다. 나도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구나. 그때 시트콤 <세 친구>의 작가를 모집한다는 텔레비전 자막광고를 보았다. 글이라곤 일기조차 제대로 써본 적 없었는데도, 그날 밤 꼬박 새워 대본을 완성했고, 응모했고, 합격했다. 아이디어 먼저, 글은 나중. 요즘도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하고 누가 물으면, 재수 없겠지만, 나는 “그냥 막 떠오른다”고 대답한다. 공상의 힘! 글 쓰는 테크닉은 작가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배웠다. 하고 싶은 일 하고 월급 받고, 너무 행복해서 미친 듯이 일했다. 내가 작가로서 김수현 선생님같은 최고의 권력을 꿈꾼다면, 그건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대로 하기 위해서다. 김수현 선생님은, 좀 엄마 취향이긴 하지만, 정말 위대하다. 시트콤 시트콤이 아니라 일종의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두근두근 체인지>의 조정린이나 <안녕, 프란체스카>의 이두일은, 내 모습 자체다. 외모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폭력,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조정린은 너무 착한, 아무한테도 나쁜 짓을 하지 않은 아이다. 그런데도 정린이 기사가 실린 인터넷 댓글을 보면, 휴. 나도 그렇게 상처를 받는데…. <두근두근 체인지> 때, 사람들이 이야기가 슬프고 잔인하다고들 했다. 그래서 사람의 입이 아니라, 흡혈귀를 통해서 말하면 덜 꿀꿀해지지 않을까,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많은 제약이라니. 내 주변만 해도 게이나 레즈비언들이 많은데, 드라마에서는 조금만 ‘퀴어적’인 냄새를 비춰도 모두 질겁한다. 섹스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고. <프렌즈>의 조이나 <섹스 인 더 시티>의 사만다는 ‘프리섹스’의 도도 넘는, 도저히 정상이랄 수 없는 섹스마니아들인데도 무지 착하게 그려지고 사랑받는데. <안녕, 프란체스카>에서도 하고 싶은 말 반의 반도 못했다. 한쪽에 무궁무진한 웃음과 이야기의 보물창고를 놔두고, 모두가 이미 퍼낼대로 퍼낸 우물에 달려들어 바닥을 박박 긁어대고 있는 현실. 내 꿈 하나는 진짜 엽기적인 포르노 코미디 만드는 거다. 난 프리섹스주의자다. 섹스는 내 취미고 스포츠다. 이 글이 인터넷에 뜨면 “너나 그렇게 걸레같이 살아라” 이런 악플이 달리겠지. 하지만 남녀가 돈 거래 안 하고, 합의 아래 행하는 섹스는 백익무해라고 본다. 결혼하는 데 지장 없느냐? 내가 결혼할 때쯤엔 이 인터뷰는 벌써 잊혀졌겠지. 하긴 사람들이 걱정은 한다. 정려원(<안녕, 프란체스카>의 얼짱 흡혈귀 엘리자베쓰)하고 인터뷰할 때, 기자가 잠깐 자리 뜬 사이에 겨우 스물몇살된 려원이 “너무 솔직하게 얘기하지 마세요. 상처 받아요”라고 귓속말 하더라. 그래서 “상처받으면 죽니?” 했다. 모든 상처가 독이 된다고는 생각 않는다. 영화,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 <세 친구> 작가 시절, 선배의 소개로 시나리오 의뢰를 받았다. 한번도 써본 적이 없었지만, “쓰다 못 쓰면 그때 가서 말고” “니가 못쓰면 널 믿고 맡긴 제작자의 판단 잘못이지 니 잘못은 아니”라는 친구의 권유로 받아들였다. 뜻밖에 영화사에서 너무 좋아했다. 그렇게 해서 <홍반장> 를 포함해서 계속 쓰게 된 거다. 난 영화 시스템이 좋다. 그곳엔 열정이 있다. 촬영 끝나면 모여서 술잔 기울이면서 치열하게 영화 이야기하고 온갖 사람 열렬히 씹어대고. 방송은 늘 시간에 쫓겨서. 하지만 당분간 영화니 방송이니 가리고 싶지 않다. 그것보다, 드라마에서나 현실에서나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다. 잘 나간다는 사람들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안 지키는 모습 너무 많이 봤다. 힘 있는 PD가 신인 여배우보고 “너 색스럽게 생겼다” 그럴 때, 그 여배우가 스물몇해 쌓아온 인격이 그 한순간에 무너지는 거다. 누구도 남한테 그럴 자격 없다.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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