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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09 18:32 수정 : 2005.06.09 18:32

수학 그리고 유머

존 앨런 파울로스 지음. 박영훈 옮김. 경문사 펴냄. 2003년

유머가 없는 사람은 자기 안에 갇힌 사람이다.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줄 모르며, 주어진 상황을 조금 비틀어 생각할 만한 여유가 없으며, 건조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이런 단정적인 표현에 발끈하여 오늘이라도 당장 ‘그까짓 거, 그거 뭐 대충’ 유머를 하면 될 것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유머러스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유머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와 부조화가 보여주는 의외성을 이해해야 하고, 반전을 기획할 줄 알아야 하며, 긴장과 기대감을 이야기 흐름 속에서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미국 템플대학 수학과 교수이자 뛰어난 수학 저술가인 존 앨런 파울로스에 따르면, 유머를 구사하는 것은 미분방정식을 풀거나 집합 연산을 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유머 속에는 수학적 구조들이 그대로 녹아 있어 유머를 구사하는 것은 마치 수학문제를 푸는 것처럼 지적인 연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학과 유머는 모두 지적인 유희의 한 형태인데, 수학이 좀더 이성적인 논리구조에 치중하고 있다면, 유머는 놀이에 중점을 둔다는 점이 다르다.

예를 들어, 패러독스나 아이러니를 생각해보자. ‘정신건강을 유지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라는 메시지나, ‘긴장을 푸시오’라고 윽박지르는 신경질적인 외침, 혹은 ‘장래 계획을 세우시오’라는 글로 가득 찬 어느 학생의 책상풍경 같은 유머 속에서 우리는 ‘이 문장은 거짓이다’ 같은 수학적 역설을 발견하게 된다. 문장이 참이면 거짓이 되고, 거짓이 되는 순간 곧바로 참이 돼버리는 이 기묘한 역설을 우리는 ‘긴장을 푸시오’라고 윽박지르는 어느 심리치료사의 신경질 속에서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신경과학자들이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발견한 사실은 더욱 놀랍다. ‘유머를 구사할 때 사람들의 머리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들여다보았더니, 유머를 이해하는 동안 전두엽을 포함해 뇌의 전 영역이 골고루 활동하면서 복잡한 두뇌활동 패턴을 보이더라는 것이다. 유머야말로 가장 복잡한 사고과정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고등한 지적활동이라는 얘기다.


언젠가 방송작가 송지나씨는 한 강연에서 ‘어렵고 힘든 위기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사람’을 가장 멋진 사람으로 꼽은 적이 있는데, 유머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 위기의 순간에서도 자신이 놓인 상황을 한발 물러나 전체적인 관점에서 파악하고, 주어진 상황을 약간 뒤틀어 볼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 유머를 구사할 만큼 똑똑하고 지적이어서 어떤 위기상황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이런 사람과 함께라면 험한 세상도 무섭지 않을 테니 말이다.

마지막 한 마디. 유머가 수학이라고 생각하니, 즐거워야 할 유머가 갑자기 어려워지면서 골치가 아파진다구요? 너무 걱정 마시라. 뒤집어 생각해보면, 수학도 유머처럼 재미있고 유쾌할 수 있다는 얘기 아닌가? 어, 갑자기 수학이 재미있어지네. 희한하네!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바이오시스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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