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버림받은 성적표
\ |
|
||||
하루 일과대로 짜인
고교생들의 시 모음집
따박따박 말대꾸와
자유를 갈망하는 내면풍경이
날것으로 드러나 있다
학원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된다. ‘옷 갈아입고 세수하고 나니/시계는 한시 반/…/하루를 마친 시각이 오늘이 아니고 내일이다.’(학원 수업을 마치고) 성적표가 스트레스의 꼭뒤. ‘성적표 가져와라/아버지가 목소리를 낮추신다/가슴이 쿵 내려 앉는다.’(성적표) 또 ‘공부도 못하는 것들이 그것 봐서 뭐 하노/……/그 특유한 담임 선생님의 말투/한해가 지난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공부 못한 죄) 그들의 눈에 공부 뒷바라지하는 엄마는 안쓰런 존재다. 늦게 들어가 자신을 기다리다 소파에 잠든 엄마를 보고 엄마가 늙어감을 안다(엄마). 조르는 옷값을 못주고 얇은 지갑을 꺼내보는 엄마가 안쓰럽고(엄마 지갑), 예쁘기보다 오래 신을 신발을 고르는 엄마를 보고 엄마 신발이 낡았음을 깨닫는다(신발). 그래서 독서실 간다고 돈을 받아서 게임방에서 놀다가 들어가 차려진 밥상을 보고는 죄책감을 느낀다(밥상). 반면 아버지는 억압자로 때로 경쟁자로 존재한다. 성적표 가져오라는 말에 가슴이 쿵 내려 앉기도 하고(성적표), 길에서 자신에게 외면당한 꾀죄죄한 아버지가 담배를 피는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아버지). ‘이게 뭐고. 이게 성적표라고 갖고 왔나?’ 아버지는 사정없이 성적표를 찢어버리고 자신의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버림받은 성적표). 노가다를 뛰고 일당 4만원을 쥐고서는 아버지 생각에 만원짜리 스킨을 사서 집에 가는 어른스러움도 있다(노가다). 특이한 것은 그들의 눈길이 약자들에게 자주 머문다는 것. 피자 햄버거에 밀려난 쪽자 팔던 할머니, 뇌성마미 귤 파는 아저씨, 부부 붕어빵 장사, 방물장수 아줌마, 깐마늘 파는 할머니, 횡단보도 짧은 시간에 쫓기는 할머니, 지하철 하모니카 할아버지 등. 그들에게 던져진 시선은 곧 자기에게로 돌아와 스스로를 여민다. 입시 때문에 사회의 문제에 등한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 효순 미선이 사건만은 남의 일이 아니다. ‘미제 재판관, 미제 변호사, 미제 원고/아름다운 나라의 것들로/아름다움 판결, 무죄가 나왔다/…/미국의 작은 테러에/눈을 감은 여린 동생들에게/할 말이 없다.’(무언) 한편, <있는 그대로가 좋아>는 중학생 67명의 시를 모았다. 고교생들과 흡사하지만 입시에 덜 찌든 탓인가 관심의 폭이 더 넓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