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6.09 19:11 수정 : 2005.06.09 19:11

식물의 역사와 신화

40억년이 넘는 지구 역사에서 원소들이 결합해 분자 유기물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집적된 ‘원시 수프’에서 독립적인 개체, 즉 세포가 탄생한 것은 30억년 전쯤이었다. 세포들은 산소를 피해 기생하는 혐기성 세균과 엽록소를 갖고 탄소동화작용을 통해 생물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남조류로 분화했다.

이 남조류야말로 지금 지구를 덮고 있는 녹색식물과 거기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동물, 그리고 인간의 요람이자 지구 생명활동의 알파요 오메가며, 인간의 역사와 신화의 출발점이자 토대다. 엽록소는 광합성을 통해 모든 생물의 원천 에너지를 합성해내고 산소를 만들어냈으며, 나아가 강렬한 태양 자외선과 우주선을 차단해 지구생물 번성의 토대가 되는 오존막 형성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구상에 아무리 많은 원소와 분자들이 존재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광합성이 이뤄질 수 없다. 거기에는 광선이라는 태양 에너지가 필수적이다. 광합성은 말하자면 지구 구성물질이 결합한 세포가 엽록소를 이용해 1억5천만㎞의 우주를 달려온 태양 에너지를 흡수·변용해서 저장하는 하나의 특수한 메커니즘이며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은 그 저장물의 소비자들이다. 특히 동물은 오로지 소비자일 뿐이다. 초식동물이 식물을 먹고 육식동물이 그 초식동물을 먹으며, 큰 육식동물이 작은 놈을 먹고, 이 모든 생물 위에 군림하면서 그들을 먹는 최종 소비자가 바로 인간이다. 결국 식물을 먹거나 식물을 먹은 동물을 잡아먹음으로써 생명을 유지하는 인간은 엽록소에서부터 육식동물에 이르기까지 누적적으로 축적된 타자의 태양 에너지를 빼앗아 먹는 약탈자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역사와 신화
그 출발점과 뿌리엔
‘녹색’ 물결 너울너울
“숲 말살하면 문명도 소멸”
생물 · 인류학등 넘나들며 설파

또한 인간은 산소를 소비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배설물을 쏟아내며, 죽어서 육신을 땅에 되돌려줌으로써 식물의 번성에도 기여한다. 공생관계인 셈이다. 숲을 말살하면 그곳의 인간과 문명도 소멸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 자체가 바닷속에서 탄생한 남조류의 후손으로, 식물과 같은 조상을 갖고 있다. 물에서 뭍으로 올라온 남조류들은 광합성 능력을 유지한 채 붙박이로 진화한 식물과, 광합성 능력을 상실하고 대신 식물이 축적한 에너지를 약탈해서 살아가는 쪽으로 진화한 동물로 분화했다. 이 때문에 동물은 광합성 능력을 잃어버리고 세포의 셀룰로스막을 상실함으로써 오히려 이동하면서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던 ‘병들거나 비정상적인 식물세포’에서 시작한, 진보가 아닌 퇴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식물의 씨앗과 동물의 알은 같은 구조와 목적을 지닌 닮은꼴이다. 식물도 다른 식물을 밟아 으깬 특정인에 대해 격렬한 반응을 나타내는 민감한 ‘감정’의 소유자라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지구의 주인이 인간일 것이라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동물과 인간은 주인공인 식물의 무제한 번식을 적절히 제어하기 위해 등장한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속한 포유류가 식물 진화의 수혜자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중생대 중반에 번성했던 겉씨식물에 이어 신생대에 속씨식물이 군림하면서 그 씨앗과 그것을 둘러싼 열매의 과육이 풍성해지자 그때까지 미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던 포유류들이 비로소 그것들을 먹이삼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결국 주변의 화초와 나무를 비롯한 녹색식물을 마구잡이로 훼손하는 것은 무지와 무례의 소치일 뿐 아니라 스스로의 생존토대를 무너뜨리는 자살행위와 같은 것이다.

<식물의 역사와 신화>를 쓴 자크 브로스는 그런 얘기를 하기 위해 생물학과 인류학, 역사, 신화, 경제학, 사회학을 종횡무진 넘나든다. 식물의 진화, 동물을 이용하는 등의 생존방법, 그리고 광대버섯과 양귀비, 삼(마리화나), 인삼, 담배 , 쑥, 밀 등 수십가지의 약초와 기호식품 재료, 인간의 주곡식물 등에 대한 이야기가 풍성하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