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09 19:14
수정 : 2005.06.09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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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의 저우언라이(晩年周恩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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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중국 당국은 <만년의 저우언라이>란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이 책의 대륙 반입을 막기 위해 세관 등지에서 강력한 단속을 폈다. 지난 2003년 4월 미국에 본부가 있는 밍징출판사가 홍콩에서 출간해 30쇄를 넘기면서 이미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이 책은 중국 당국의 새삼스런 ‘금서’ 지정에 힘입어 대륙에서도 곧바로 해적판이 등장했다. 이 책은 지난해 초 중국 당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된 <중국농민조사>와 더불어 중국 주요도시에서 가장 잘 팔리는 ‘해적판’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 책이 다루는 시기는 주로 저우언라이(1898~1976) 전 중국 총리의 마지막 10년이다. 이 시기는 극좌파들이 모든 인민을 ‘공산주의적 인간형’으로 개조하겠다는 무모하고 계급투쟁을 벌인 문화대혁명(1966~1976)이라는 대동란의 시기와 일치한다. 이 책이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까닭은 지은이가 방대한 1차 자료의 섭렵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어떤 저우언라이 전기보다 더욱 생생하게 그의 만년의 행적을 재구성하는 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중국공산당(중공) 중앙문헌연구실 저우언라이 생애 연구소조 조장을 지냈다. 중공 중앙문헌연구실은 중국공산당의 공식 회의기록은 물론 각급 지도자들과 관련된 문서와 메모, 심지어는 주요 지도자들이 구두로 나눈 얘기에 관한 기록까지 모두 집결되는 ‘실록편찬실’과 같은 곳이다.
<만년의 저우언라이>를 쓴 가오원첸은 중국공산당이 공식 출간한 <마오쩌둥전>과 <저우언라이전> 가운데 문화대혁명(1966~1976) 시기를 집필한 ‘문혁사’ 연구 전문가다. 그가 문혁 연구에 심혈을 기울인 건 그의 어머니의 수난과 연관이 있다. 영국산 아편을 불태워 아편전쟁의 불을 댕긴 린쩌쉬(임칙서·1785~1850)의 5대 손녀인 가오의 어머니는 문혁 때 허난성으로 하방당한 뒤 이 지역 농촌에서 굶어죽은 이들의 실상을 상부에 보고했다가 ‘사상 우경’ ‘현행 반혁명 분자’ 등의 죄목을 얻고 문혁 시기의 바스티유로 악명 높은 친청 감옥에 갇혀 7년간 박해를 받았다. 가오는 “역사의 진상을 사실 그대로 서술해 백성들에게 알림으로써 하늘이 내린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이 이 책을 쓰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특히 1989년 천안문사태 때 학생운동에 공감과 지지를 보냈던 그는 6·4 이후 당국에 불려가 조사받고 숙정당한 뒤 “공산당과 인연이 다했다”고 느껴 미국으로 피신한다. 615쪽에 이르는 이 방대한 실록은 그가 미 하버드 대학의 도움으로 5년 동안 연구실에 틀어박혀 써내려간 성과다.
이 책이 지금까지의 통설과 다른 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중국 혁명의 두 영웅 저우언라이와 마오쩌둥의 관계에 대한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대혁명 시기 저우언라이의 처신에 관한 것이다.
먼저 가오는 저우와 마오의 관계가 통설처럼 혁명적 전우일 뿐 아니라 사실은 평생 애증으로 얽혔음을 보여준다. “일을 꾀하는 것은 마오이고, 이루는 것은 저우”(謀事在毛, 成事在周)란 세속의 말이 일러주듯 두 사람의 관계는 군신관계와 닮은 면이 있다. 마오는 저우가 ‘재상’ 자리에 머무를 것임을 계속 암시해왔음에도 인민의 신망을 얻고 있는 저우에 대해 끊임없이 질시했다. 저우가 1970년대 초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마오는 저우의 질병 치료에 대해 1. 기밀을 유지해 총리(저우언라이)와 덩 다제(덩잉차오)에게 말하지 말라 2. 검사하지 말라 3. 수술하지 말라 4. 간호와 영양을 강화하라는 등 4개항의 지시를 내렸다고 가오는 주장했다. 가오는 또 1976년 1월 저우가 숨을 거뒀을 때 마오가 중난하이(중국 지도부가 집단 주거하는 곳)에서 밤새 폭죽을 터뜨렸으며, 다음날 폭죽 껍질 쓰레기가 트럭으로 하나 가득 실려 나갔다는 중난하이 내부의 목격담을 인용했다.
가오는 또 저우가 문혁 시기에 사인방과 마오의 ‘극좌’ 편향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는 통설과 달리, 그 또한 자기 한 몸의 보신을 위해서만 행동했으며, 이에 관한 당안(자료)은 1980년 저우의 아내인 덩잉차오(등영초)가 훼손시켰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중국 혁명이 낳은 두 위인의 인간적인 면모와 약점을 방대한 1차 자료를 바탕으로 생생하게 드러낸 인물 전기의 걸작”이라는 호평과 더불어 “미리 짜여진 틀에 따라 역사를 도식적으로 짜넣어 공정성과 객관성을 상실했다”는 혹평을 동시에 받았다. 중국 내외에서 가오에 대한 논란이 잇따르고 있지만, 이 책이 중국 당국의 입맛에 맞게 서술된 현대 중국사의 빈틈을 보충하는 구실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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