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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09 19:18 수정 : 2005.06.09 19:18

박정애 청소년용 장편 <환절기>

제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인 박정애(35)씨가 청소년용 장편소설 <환절기>(우리교육)를 펴냈다.

“그래, 여자의 몸은 전쟁터란다. 우리가 꿈에서도 원하지 않은 남자들의 전쟁이 우리의 몸뚱이 위에서 벌어지지. 여자가 자기 몸뚱이를 원치 않은 전쟁터로 빼앗기는 일은 우리 세대에서 그쳤어야 하는 건데, 아직도 그런 일은 이 세상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구나.”(116쪽)

소설의 중후반부에 나오는 이 대목은 소설 <환절기>의 주제를 요약해서 들려준다. 주인공인 열일곱 살 소녀 ‘수경’에게 ‘봉선 할머니’가 보내 온 편지의 일절이다. 봉선 할머니는 수경 자신의 할머니와 함께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 갔던 이로, 소설 속에서는 수경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수경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체험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수경의 고민에 답하는 구실을 한다. 인용된 대목에서 봉선 할머니는 수경과 이종사촌 동생 수향이, 몸을 의탁하고 있던 ‘목순 아줌마’의 아들과 남편에게 각각 성폭행당한 일을 두고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 아픈 기억과
성폭행 당한 자매 고통 병치
여성적 가치 푸짐한 문장에

소설 <환절기>는 봉선 할머니가 편지를 통해 들려주는 일본군 위안부 시절의 끔찍했던 경험과, 의지가지 없는 수경 자매가 성폭행으로 상징되는 세상의 폭력을 뚫고 희망의 씨앗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병치시킨다.

작가 박씨는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물의 말>이나 그 이전 문학사상 신인상 수상작인 <에덴의 서쪽> 등에서 한결같이 웅숭깊은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을 보여준 바 있다. 이번 소설 <환절기>에서도 그는 남성의 폭력적 세계관에 맞서는 여성적 가치를 한껏 표방해 마지 않는다.


“찹쌀가루에다 애쑥 찧어 넣고 잘 치대서 시루에 찐 쑥떡을 숭덩숭덩 썰어 조청에 찍어 먹거나 콩고물을 묻혀 먹으면 그렇게 맛날 수가 없어.”(58쪽)

“호고 박고 시치고 꿰매고 수놓은 그 물건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만져보는 동안 아담은 떨어지고 갈라지고 해어지고 닳아 너덜너덜한 자신의 인생이 정성스런 바느질 솜씨로 기워지는 느낌을 받았다.”(167쪽)

봉선 할머니가 편지에서 설명하고 있는 쑥떡 이야기는 뭇 생명을 먹여 살리는 모성의 위대함을 상징하는 듯하다. 뒤의 인용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아담’은 수경이 방송통신고의 동료 학생들과 함께 꾸리고 있는 영어회화반 선생인 혼혈 청년의 이름인데, 우연찮게도 그는 봉선 할머니의 외손자로 밝혀진다. 인용 대목은 봉선 할머니가 죽은 뒤에야 할머니 집을 찾은 수경과 아담이, 할머니가 아담 앞으로 남겨 놓은 상자 안의 아기용품을 확인하는 장면이다. 할머니는 자신과 다투다시피 하고 미국으로 떠난 뒤 연락이 끊긴 딸이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턱받이, 배내옷, 싸개, 손수건, 복주머니, 이불, 한복, 베갯모, 파자마 따위를 정성들여 만들어 놓았던 것. 그 아기가 바로 아담이었거니와, 아담의 어미는 머지않아 자살을 택했다는 사실을 설명 삼아 덧붙여야겠다.

소설의 결말은 수경 자매가 새해 첫날 포항 호미곶에서 일출을 보는 장면으로 처리된다. 그 때의 햇볕은 소독과 치유의 효과를 지닌다.

“바다 끝에서 붉은 햇덩이가 솟아오르는 순간, 저는 등대 옆에서 수향이 손을 꽉 잡고 눈을 감았답니다. 새해 첫 햇볕이 수향이와 제 몸을 구석구석 쬐어 지난해의 아프고 무서웠던 기억을 바삭바삭 말려달라고 빌었어요.”(196쪽)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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