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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탁 장편 <전화번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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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마닥 내력 희비극
실천문학 신인상 받아 감옥과 다름없는 이 공간에서 전화번호부의 본디 용도는 수감자들의 밑씻개였으나, 그것이 ‘대빵’의 독서 대상이 되면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얻게 된다. ‘대빵’이 전화번호부를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까닭은 거기 적힌 여자들의 이름을 찾아 가며 상상의 나래를 펴기 위한 것이다. ‘첫사랑’의 여자와 같은 이름이라거나, 그냥 왠지 끌리는 이름을 찾아서는 그 미지의 여자와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제멋대로 엮어 나가는 것이다. 소설은 전화번호부를 매개로 한 ‘대빵’의 권력 행사와 그를 중심으로 한 수용소 내의 권력 관계, 수용된 사람들의 이런저런 사연, 그리고 대부분 자의와 무관하게 ‘선진적인 거리 질서 정화’ 차원에서 강제로 끌려 와 갇혀 있는 이들의 탈출 시도 등을 희비극적으로 그린다. 광주학살과 베트남전쟁 같은 사회적 아픔들이 양념처럼 곁들여져 있지만, 극도로 한정된 공간 탓인지 권력과 폭력, 구속과 자유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에는 이르지 못한 느낌이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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