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16 16:32
수정 : 2005.06.16 16:32
1965년 2월21일 뉴욕 할렘의 오더본 볼룸에서 총성이 울렸고, 흑인 청중들에게 막 연설을 시작하려던 흑인 이슬람운동 지도자 맬컴 X(엑스)는 쓰러졌다. 3년 뒤인 68년 4월4일에는 테네시주 멤피스의 로레인 모텔 발코니에 서 있던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이 역시 암살자의 총격에 쓰러졌다. 두 사람 모두 39살의 젊은 나이 때였다. 이로써 55년 12월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시내버스 백인 좌석에 앉았다가 백인에게 자리를 비켜주지 않아 시의 시내버스 흑백분리법 위반 죄로 흑인 로자 팍스 할머니가 체포당한 사건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전개된 50
-60년대 미국 흑인 저항운동의 정점에 섰던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모두 비운에 갔다.
앞서 63년 8월28일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워싱턴 링컨 기념관 앞에 모인 25만여명의 군중을 향해 외쳤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앨라배마주에서 흑인 소년 소녀가 백인 소년 소녀와 형제자매가 되어 함께 손을 잡게 되는 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 흑인과 백인, 유대인과 이방인, 신교도인과 천주교인이 모두 함께 손을 잡고 오래된 흑인 영가를 노래할 수 있는 그날을 앞당길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침내 자유, 마침내 자유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는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50~60년대 미국 흑인운동의 정점에 섰던 마틴 루터와 맬컴X
킹 목사는 흑백통합을, 맬컴은 미국과의 결별을 주장했다
킹목사의 꿈은 이루어졌는가 아니면 맬컴이 저주한 ‘악몽’이 계속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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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 3월26일 시민권법안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상원에 ?석했다가 만난 마틴 루터 킹(왼쪽) 목사와 맬컴 엑스. 이 짧은 대면이 두 사람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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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워싱턴 행진을 두고 “얼간이 행진” “백인광대와 흑인광대가 함께 출연한 소풍이자 서커스”라며 비아냥댔던 맬컴 엑스는 <암스테르담 뉴스> 기자에게 말했다. “이제 쇼는 끝났지만 흑인들에게는 여전히 땅도 직업도 집도 없다. 흑인 기독교 교회는 여전히 폭탄세례를 받고 죄없는 어린 소녀가 살해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워싱턴 행진이 달성한 것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백인이 ‘미국의 꿈(아메리칸 드림)’이라고 여기던 것이 흑인에게는 긴 세월 ‘미국의 악몽’이었다.”
반세기 전 ‘흑인 민족주의’와 ‘흑백 통합주의’의 대표자로 미국과 세계를 뒤흔들었던 저들의 불꽃같은 역정 뒤 미국역사는 어느쪽으로 흘러갔던가. 마틴의 예언대로 ‘꿈’이 실현됐는가, 아니면 맬컴이 저주한 ‘악몽’이 계속되고 있는가?
오늘날 마틴 목사는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한테서도 위대한 미국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다. 매년 1월 셋째 주 월요일은 국가가 정한 그의 기념일이며 암살당한 4월 첫째 주에도 기념행사가 열린다. 그러나 맬컴을 기억하는 미국인은 많지 않다. 그의 탄생 80주년을 맞은 지난 5월19일에야 그의 기념관이 만들어졌다. 왜 그럴까?
추앙받는 마틴, 외면당한 맬컴
92년에 나온 아프리카계(흑인) 미국인 신학자 제임스 H. 콘 뉴욕 유니언 신학대 교수의 <마틴과 맬컴, 그리고 미국>이 <맬컴 X vs 마틴 루터 킹>이란 제목으로 번역돼 나왔다. 저자는 미국 흑인 저항운동의 기원에서부터 두 사람의 성장 배경과 과정, 이념, 활동내용, 인식변화와 새로운 시도들의 궤적 등을 자세하게 추적한 뒤 그들의 업적과 유산까지 찬찬히 살핀다. 방대한 자료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다.
저자에 따르면, 마틴이 대표했던 통합주의자들은 한마디로 “당신은 미국인이면서 동시에 검둥이가 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렇습니다”라는 대답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흑인 지도자의 과제는 “자신들이 주창하는 가치와 흑인들을 다루는 현실 사이의 모순을 보여줌으로써 백인들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흑인 민족주의자들은 흑인은 백인과 어울릴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그들은 “아프리카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한 사회·정치구조를 창안할 수 있는 다른 장소로 감으로써 미국과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흑인 중산층 출신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백인들로부터도 환영받았던 마틴과 밑바닥 출신에 뚜쟁이, 건달, 강도, 살인자로 전전하다 흑인 이슬람운동을 통해 극적으로 거듭난 맬컴의 파란만장한 이력 및 세계관의 차이와도 겹친다.
저자는 두 사람이 출발점은 달랐지만 굴절을 거치면서 각기 자신들의 신념이 지닌 한계를 인식하고 대립하기보다는 서로 이해하고 상호 접근해간 사실을 논증한다. 마틴이 계속되는 미국의 인종차별과 베트남전 개입 등을 겪은 뒤 1960년대 후반엔 “우아한 자태로 미국의 꿈을 얘기하던 옛 마틴은 사라지고 이제 맬컴처럼 끊임없이 미국의 악몽에 대해 얘기하는 새로운 마틴만이 남았다”며, 맬컴 역시 “킹 박사가 원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바로 자유”라고 말했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대립 넘어 점점 상호 수렴
기독교 신학자인 저자가 ‘흑인의식’을 명확히 하면서 기독교를 “사악한 백인종의 창작물” “노예를 양산하는 거짓말”이라고 폄훼한 무슬림 맬컴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도 이채롭다. 워싱턴 행진에 대해서도 저자는 “흑인 자본가 계급에 의해 통제됐고, 경제적 지원을 했던 백인 자유주의자들도 간접적으로 통제했다”며 맬컴의 비판이 근거있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맬컴의 언표는 언제나 신랄하고 날카로왔다. “누가 뭐래도 나는 흑인이다. 나는 흑인에 공감하며, 흑인에 충실하며, 내 모든 요소요소는 흑인이다. …나는 미국인이 되는 데는 아무 관심이 없다. 미국이 내게 아무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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