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16 18:12
수정 : 2005.06.1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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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호/ 고려대 체육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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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데미안’
주영아! 신문지면에 두 번째로 쓰는 편지인 것 같구나. 지난번에는 너에 대한 나의 기대와 우려를 주제로 삼았는데, 이번에는 너에게 좋은 책 한권을 소개하고 싶구나. 내가 고 2때 읽고 요즘에 다시 읽었던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이라는 소설이다. 고등학교시절 홀로된 생활에서 오는 지독한 외로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속에 이 책의 주인공인 싱클레어를 통해서 나 자신을 투사해 보았다면, 이제는 싱클레어의 정신적 스승인 데미안을 통해서 나 자신을 성찰할 수 있었다. 역시 책은 읽을 때마나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소설은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선과 밝음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악과 어둠도 함께 있다는 것을 청소년기의 싱클레어의 갈등을 통해서 전해준다. 너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안정되고 평온한 환경에서 축구가 좋아 시작했고, 지금은 축구천재라는 찬사를 받고 있지만, 앞으로 너를 어둠의 세계로 이끄는 프란츠 크로머와 같은 인간을 만날 수 있을 거야. 금욕주의적인 가치관과 금지된 것에 대한 동경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싱클레어에게 어두운 뒷골목의 타락을 유혹하는 베크라는 인간도 만났을 수 있다.
여드름이 얼굴에 많이 난 것을 보니 애인이 있을 나이가 된 거지. 가슴속에 감추어진 굼벵이 그림에서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구나 생각했다. 안정환 선수의 반지 세리머니와 같이 해석해도 될까. 굼벵이의 상징이 싱클레어가 공원에서 만난 어른스럽고 우아하며 뚜렷한 얼굴 윤곽을 가진, 당당한 표정의 한 여인 베아트리체가 되길 바란다. 싱클레어가 붕괴된 인생의 한 시기에 마음속에 숨어 있는 암흑과 악을 떨쳐 버리고 밝은 세계로 인도했던 베아트리체 바로 그 연인. 상상의 연인이어도 좋다.
이 책에서 싱클레어의 정신을 이끌어주는 데미안을 만날 수 있다. 싱클레어가 갈등하고 고통 받을 때마나 베아트리체의 모습으로, 새의 모습으로, 애바 부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고민을 농익게 하고 갈등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강요하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가진 데미안. 너에게 좋은 친구며, 선배며, 애인이며, 스승이 되리라 생각한다.
축구가 좋아 시작했고 천재란 찬사를 듣고 있지만
주어진 조건과 상황이 너를 혼란스럽게 할수도 있어
역경을 헤쳐나갈 때 데미안의 메모를 기억하렴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알을 깨지 않으면 안된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보낸 메모는 아마도 네가 축구라는 창으로 세상을 보는 시야의 폭을 넓히는데 좋은 글일 것 같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아부락사스는 악과 선의 세계가 있음을 직시하게 이를 동시에 품은 신이며, 인간의 진정한 모습인 것이다. 소설 <데미안>은 선과 악, 밝음과 어둠이라는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가진 인간의 모습을 싱클레어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인간은 그것을 동시에 포용할 때만 거짓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너는 청소년과 성인이라는 두 가지 신분으로 국가를 대표하고, 학생신분이 아닌 직업선수가 되었다. 주어진 조건과 상황이 너의 정체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골 세리모니로 하는 너의 기도를 자기 멋대로 해석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사람들도 있었지. 또 너의 실제의 모습과 다른 이미지로 포장될 수도 있지. 너의 참모습과 세상이 만들어내는 너의 이미지가 혼돈되는 경험도 할 거야. 이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할 너의 역경으로 생각하고 이때 이 소설의 주인공인 싱클레어가 안내해 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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