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6.16 18:18 수정 : 2005.06.16 18:18

내 몸을 나눠주니 여러 목숨 삽니다

최정식 목사(45)의 몸은 가볍다. 그는 두 개여야 할 콩팥이 하나뿐이다. 간은 남을 위해 뭉턱 잘려 나갔다. 그렇다고 ‘있어야 할 것’이 없어서 가벼운 것은 아니다. 내놓고 베푸는 삶이 세상의 욕심을 털어냈다. 이것저것 따지고 계산하는 얄팍함을 벗어난 그는, 그래서 가볍다.

그는 1993년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던 30대 남자에게 자신의 콩팥 하나를 떼어줬다. 2003년에는 간경화로 삶을 접어가던 50대 주부를 위해 간 일부를 선뜻 내놨다. 그는 다음주 백혈병 환자를 위한 골수이식을 위해 또 한 번 수술대에 오른다. 살아 있는 사람이 남에게 내어 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다 내놓은 셈이다.

93년 신장, 2003년엔 간 떼줘
골수까지 내주면 다 내주는 셈
내놓고 베푸니 삶은 가볍고
마음엔 기쁨이 가득 차오른다

그는 93년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이사장 한정남)’를 통해 콩팥을 기증하면서 골수도 기증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12년 전 약속은 지난달 ‘한국조혈모세포은행’에서 최 목사의 골수와 ‘딱 들어맞는’ 백혈병 환자가 나타났다는 연락이 오면서 지켜지게 됐다.

“골수를 기증해 달라는 전화를 받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기증하고 싶어도 기증자와 환자 사이의 조직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10년이 넘도록 연락 한 번 못 받은 사람이 많죠. 몇 만 명 가운데 겨우 한 명 정도 나올까 말까한 확률입니다. 저에게 그 기회가 온 거죠.” 그는 나눔의 기회가 또다시 찾아온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비혈연자’ 사이의 골수이식 가능성은 5만분의 1이라고 한다. 게다가 골수기증 의사를 밝혀도 실제 수술을 받게 되면 이를 번복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만큼 골수이식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몸 성한 사람이 일면식도 없는 남을 위해 멀쩡한 자기 몸에 칼을 대는 것은 쉽지 않다. 이번 골수 이식도 콩팥이나 간 이식수술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전신마취 상태에서 엉덩이뼈에서 골수를 뽑아야 하는 간단치 않은 수술이다.

“몸에 날카로운 칼이 들어가는 아픔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술을 하고 나면 좋은 일을 했다는 흐뭇함과 함께 몸에서 ‘반응’이 옵니다. 몸이 더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상하죠?” 그런 탓일까? 그는 콩팥 이식수술을 마친 뒤 2개월 만에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다.


그는 2개월에 한번씩 꼬박꼬박 헌혈을 한다. 그의 가느다란 팔뚝은 지금까지 150여 차례나 헌혈을 위한 바늘을 받아들였다. “내가 언젠가 아프고 어려운 상황이면 누군가 나를 도와줄 거란 믿음이 있습니다. 지금 건강할 때 먼저 남을 도와야죠. 그래야 나중에 도움을 받더라도 미안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식수술을 위해 가족의 동의를 얻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선뜻 내켜 하지 않던 형님도 이제는 ‘또 주냐’며 너그럽게 받아 주십니다.”

그 같은 사람은 의외로 많다. 2001년부터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를 통해 콩팥과 간을 모두 ‘내 준’ 사람은 23명이나 된다.

차가운 칼날을 댄 살에는 새살이 돋고 떼어 줬던 간은 다시 자라났다. 몸 밖으로 나간 피만큼 따뜻한 피가 다시 몸을 돌았다.

“더 이상 내줄 것이 없으니 이제는 장기기증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죠. 아, 제 생명이 다하는 날에는 ‘크게’ 내놓을 수 있겠네요.” 노인복지에 관심이 많다는 그는 무료양로원을 지을 꿈을 꾸고 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