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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16 18:40 수정 : 2005.06.16 18:40

독일 문학시장은 비유럽어문화권에서 번역된 해외문학에는 배타적인 경향이 있다. 이를 역류하듯 요즘 이슬람문화권 출신 작가의 작품 둘이 뜨고 있어 눈길을 끈다. 금년 5월까지 <슈피겔> 베스트셀러 20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던 <아몬드> 라는 소설과 평론가들의 호평 속에 독일지성인의 주간지 <디 차이트>의 추천 서적 차트 1위에 오른 <눈(雪)>이라는 소설이 그것이다.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은 작가가 오리엔트와 서구를 오가는 경계인이라는 점, 그리고 이런 시각에서 이슬람문화의 폭력성을 은밀하게 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몬드>

“아직 어린 나의 허벅지를 사정없이 더듬어오는 40살 초반의 남근은 멍청한 듯 무감각했고 야비했다.” 16살 어린 나이에 종용받은 조혼의 첫날밤을 1인칭 화자이자 여주인공인 바드라는 이렇게 회상한다. 핏자국이 묻은 바드라의 속옷은 처녀성의 증거물로 환호의 대상이 되지만 50살의 원숙한 여인이 된 화자의 시각에는 “여자를 자신 소유물로 예속하는 이슬람남자들의 우매와 잔인함”에 불과하다.

여성의 음부를 의미하는 상징어 ‘아몬드’를 제목으로 삼은 이 소설의 배경은 모로코. 네디마(가명)라는 모로코 출신 여류작가의 데뷔작으로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이름이 좋아 셋째부인이지 바드라는 아들을 낳아줘야 하는 씨받이고 천덕꾸러기에 지나지 않는다. 후손생산이라는 명분으로 밤마다 자행되는 강간의 지옥 3년, 더 이상 이를 견디지 못하고 바드라는 탈출을 감행, 고향을 떠나 대도시 탕가에 사는 이모집으로 도주한다. 촌티를 벗지 못한 그에게 유혹이 손길이 다가온다. 돈과 지성을 겸비한 의사 드리쓰. 바드라는 사랑에 눈을 뜨고, 모차르트, 재즈, 플로베르의 세계로 인도된다. 그를 통해 남자에게 봉헌하는 성, 후손 분만을 위한 성, 결혼의 필수충족조건으로써의 성에서 해방되고, 오로지 향락만을 위한 성을 체험한다. 정신적, 지적 성숙과 함께 바드라는 자립의 기쁨을 누리며, 현대적인 직업여성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바드라는 어느 순간부터 드리쓰의 어떤 터부도 경계도 두려워하지 않는 성에 깊은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자신이 드리쓰의 애욕의 노예라는 인식에 이르자, 또한 이 굴레에서도 해방되기를 갈구한다.

프랑스 문학평론가들이 에로틱 소설장르의 대작이라 절찬한 소설답게 스스럼없이 섹스가 묘사된다. 마치 주인공 바드라의 연인 드리쓰의 성생활처럼 부끄럼이 없이 당당한 문체다. 그런데도 이 소설에 형상화된 육체의 향연은 퇴폐적이지도 않고, 포식한 위에서 올라오는 시큼한 냄새도 나지 않는다. “폐쇄적이고 여성억압적인 이슬람문화에 분노하여 필을 들었노라”고 선언한 이 작가는 이 아름다운 삼라만상을 주신 신께서 내리신 섹스를 향유하는 권리의 행복함을 모든 짓눌린 이슬람 여인에게 알리려는 듯하다.


아랍계의 네티즌들로부터 “갈보”, “이슬람의 치욕”이라고 헐뜯음을 당하는 네디마가 <아몬드>를 아랍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쓴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모로코에 사는 40대 중반의 여류작가라는 것 뿐, 베일에 싸여 있는 것도 신변안전 때문이다.

<눈>

터키의 오지 카르스에 주인공 카가 찾아든다. 학교쪽의 히잡(머릿수건) 착용금지에 반발하는 16살부터 18살 나이의 여학생들 연쇄자살사건으로 음험한 분위기가 감도는 카르스. 이스탄불 태생에 독일에서 10년 이상 작가로 활동하다 얼마 전에 귀국한 카는 카르스 주민들에게는 이중의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국내에도 이미 번역 출간된, 추리소설 형식의 이 소설은 서로 상이한 요소들의 동시성의 추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역사 속에 이미 사라진 것들이 부활이나 한 듯 명멸하며 교차하는 모순의 불가사의를 추적하는 것이다. 즉 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들이 대치되어 있고, 실의에 빠진 좌파, 이슬람혁명군, 쿠르드 민족주의자들의 얼키고 설킨 싸움이 계속되며, 이들은 또한 비밀경찰의 물밑조정을 받는다.

미궁에 빠진 연쇄자살사건을 규명하기 위해 온 카르스에서 카는 오히려 전대미문의 교묘한 정치극에 휘말린다. 또한 대학시절 풋풋한 사랑을 나눴던 이페크와의 해후는 카의 머리를 교란시키고 퍼붓는 폭설에 발까지 묶인다.

터키의 중견작가 오르한 파묵(54)은 독일에서도 이미 그 역량을 인정받은 작가. 꾸준한 파묵팬이 형성되어 있을 정도다. <눈>은 지금까지 독일에 선보인 소설 <백색의 보루>(1990), <흑서(黑書)>(1995), <새로운 삶>(1995), <내 이름은 적색>(2001)에 이어 다섯 번째 독일어로 번역된 소설이다.

개인과 국민의 정체성 문제, 서구화와 이슬람문화 전통 사이의 갈등은 지금까지 파묵 작품세계의 핵이었고, 이는 <눈>에서도 변함이 없다.

이스탄불 태생의 파묵은 뉴욕에서 건축학과 저널리즘학을 전공했으며, 그곳에서 외국인 소설가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인공 카처럼 독일에서 10여년간 작가생활을 했으며 현재 이스탄불에서 활동 중이다. 보쿰(독일)/양한주 yanghanj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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