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16 19:07
수정 : 2005.06.16 19:07
|
김지원 장편 <물빛 목소리>
|
미국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소설가 김지원씨가 새 장편 <물빛 목소리>(작가정신)를 펴냈다.
김지원씨의 소설은 나른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어딘지 서투른 듯한가 하면 거꾸로 고도의 기교의 소산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부는 매우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데, 전체적으로 보면 안개에 휩싸인 듯 뿌옇고 막연한 형상으로 다가오고는 한다. 이번 소설에서도 ‘의도자들의 서클’을 이끄는 장 선생이라는 인물, 그리고 주인공 영희와 결국 결합하게 되는 ‘마술사’ 안한얼 등은 아무래도 현실감이 떨어지는 인물들이다. 그런 점에서라면 어느 날 문득 시골 민박집 겸 식당에 찾아들어 그 집 주인과 결혼하는 파키스탄인 노동자 지밀 부자 역시 현실감이 희박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주인공 영희부터가 땅 위 몇십 센티미터쯤 떠 있는 인물처럼 보인다.
뼈대만을 간추리자면 소설은 첫사랑 남자에게 버림받은 영희가 우연찮게 시골 민박집 겸 식당 종업원으로 눌러앉았다가 하와이 동포 출신 안한얼을 만나기까지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영희의 실연에서 새로운 사랑의 발견에 이르는 경로를 일직선적으로 또는 목적의식적으로 좇기보다는 한없이 게으르달까, 해찰 부리는 어린아이 같은 걸음으로 횡보해 간다. 그 과정에서 불쑥 출현했다가 문득 퇴장하는 이런저런 인물들, 우연히 맺어졌다가는 풀리기도 하는 인연의 타래를 묘사하는 데에 작가는 더 열심인 것처럼 보인다. 상처를 딛고 사랑을 얻는 영희의 행로에는 시종 물의 이미지가 수반되는데, 소설 제목의 의미는 막연한 대로 아래의 인용문과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 환부를 핥으며 부활의 내일을 기다리는 동안의 영희의 독백과 같은 말이다.
“내 혀를 기다리는 동안은 고요하겠다. 선조로부터 온 말들, 그 말들을 물빛 그대로 일으키면 나는 일어날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의 어떤 말도 이해할 것이다.”(78쪽)
최재봉 기자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