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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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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많이 화를 안 내게 되었다. 때로는 나에게 닥친 어떤 일이 분명히 화를 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나 스스로 잊어먹고 있다가 누군가가 그 일이 정말 화날 일이라고 누누이 일러줘서야, 아하, 그 일이 정말 화날 일이었구나 깨달을 때도 있다. 남들은 화 날 일에 화를 내지 않은 것이 화날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그런데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하여간, 나는 화날 일에 화를 내지 않은 것이 오히려 즐거울 때도 있다. 내가 화를 또 한번 안 내 버렸구나, 거 좋은 일이구나, 뭐 그런 느낌. 생각해 보라. 화날 일 있다고 매번 화내며 살다보면, 그것이 어디 사는 것이, 사는 것이겠는가. 그리고 사실 우리 사는 세상은 그 얼마나 화날 일 천지더란 말인가.
최근에도 나는 분명히 화날 일인데, 화는커녕 나를 화나게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한 사람의 행위를 보고 오히려 즐거워하는, 기이한(그러나 나로서는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경험을 했다. 그것은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 그 일을 겪고 나서 나는 <한겨레> 이 난에 꼭 그 일을 써야지, 주위 사람들에게 말해 두었던 참이었다. 그랬더니, 또 주위 사람 누군가는, 왜 좋지도 않은 이야기를 쓰려고 하느냐고, 그것은 광주사람 전체의 망신일 수도 있다고 또 나에게 막 화를 내던 것이었다.
각설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고 하니, 지난 오월 말에 광주에 사는 지인에게서 황지우 극본, 이윤택 연출,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연극 <오월의 신부> 티켓이 있으니 광주에 한번 오라는 전갈이 왔다. 갔다. 갔는데, 내가 보기에는 <오월의 신부>를 보려고 광주 온 동네 사람들이 광주문예회관으로 일제히 쏟아져 나온 것만 같이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연극구경을 오다니. 그런데 가만 보아하니, 구경온 사람들 중 절반은 나처럼 공짜티켓으로 왔고 나머지 반 중 또 절반은 진짜 돈 내고 보러 온 사람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좌석번호도 적히지 않은(그래서 그것 가지고는 입장할 수 없는) 초대장이라는 이름의 파란 표딱지를 들고 온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간은 어머어마한 사람들 틈에 돈도 없이, 티켓도 없이, 초대장도 없이 그냥 ‘무대뽀’로 들어온 사람들도 ‘있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말하자면, 연극이 보고 싶은데, 돈 없다고, 티켓 없다고, 초대장 없다고 못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는 지금 외친다. 돈은 나중에 줄 값에, 보고 싶은 사람에게 보게 하라! 연극은 무대 위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 연극은 무대 아래서도 완성시킨다.
공짜티켓 들고 '자리' 찾으니
술냄새 팍팍 풍기는 사내
“세상 그리 살지마” 꿍얼대고
“기막혀라” 일행 으르렁댈 때
무대위엔 눈물나는 연기가 한창
연극은 무대 아래서도 완성된다!
나같이 좌석이 지정된 티켓을 지닌 사람들은 어차피 공연시간 전까지만 들어가서 여유있게 내 좌석을 찾아 가면 되므로 입장을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좌석이 지정되지 않은 초대장을 지닌 사람, 초대장도 뭣도 없고 다만 통로에 앉아서라도, 아니, 서서라도 나는 그 연극을 꼭 봐야 쓰겠다, 하는 사람들은 사정이 달랐다. 그리하여 정작 좌석이 지정된 티켓 한 장만 믿거라, 하고 공연장에 입장했을 때는 이미 공연이 시작되고 있는 참이었다. 어찌됐든 우리는 티켓을 꼬나쥐고 천천히, 그러나 여유있게, 조금은 우쭐하면서(얼마나 같잖은가 말이다. 공짜티켓 하나 얻은 것이 무슨 특권층이라도 된 듯이) 우리의 좌석을 향해 나아갔다. 통로에 빽빽히 앉은 사람들에게 죄송합니다, 말은 하지만, 죄송하다는 그 말 자체가 벌써 우리는 당신들에게 실은 죄송한 것이 별로 없걸랑요, 하는 말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 우리는 계속 죄송합니다, 하며 나아가서 드디어 우리 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거기, 천신만고 끝에 다다른 우리의 지정좌석에 앉은 한 사나이 있었으니, 술냄새 팍팍 풍기며 사나이 명령을 때리길,
“나는 여기 앉아 있을 테니까, 집이들 중에 한사람은 통로에 앉어.”
일행들은 기가 차고 코가 막힐 일이 따로 없다는 표정인데, 순간, 나는 갑자기 연극보다 우리 좌석 차지하고 앉아 우리를 화나게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남자에게 확 ‘흥미’가 땡겼다. 연극은 이미 시작되고, 일행들은 기가 막혀 씩씩대고 남자는 계속 꿍얼거리는데, 가만 듣자 하니,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일찍 들어왔어도 자리가 없어 통로에 앉고 뒤에 선 사람이 태반이건만 늦게늦게 들어와서 내자리입네, 자리 내놓으라는 짓거리가 어디 있느냐고, 세상을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하면서, 결정적인 멘트를 날리는데, 우리가 아주 악독한 여자들이란다. 암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나는지도 모르는 공짜표로 자기 자리 딱 만들어놓은 것이 아주 악독하다고.
앞에서 연극은 돌아가고, 남자는 계속계속 꿍얼거리고, 일행 중 한 사람은 낮게, 그러나 사뭇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린다.
“아저씨, 지금 연극 하고 있잖아요. 아저씨 계속 말하면 진행요원한테 신고할 거예요.”
아저씨도 질세라, 꿍얼거린다. 무대 위에서는 지금, ‘그해 오월’에 정신을 놓아버린 작중 인물 허인호가 ‘아조 슬프디 슬픈’ 맨몸으로 나는 기뻐요, 나는 기뻐요, 하느님 영생복락 축복 주시고… 역싸하시고… 사뭇 눈물나는 연기를 펼치는 참인데, 무대 아래서는 한 아저씨의 꿍얼거림과 한 아줌마의 으르렁거림이 숨가쁘다.
나는 무대 위를 올려다 보며 눈물 짓다가, 무대 아래의 숨가쁜 설전을 바라보며 쿡쿡거린다. 그리하여 그날 내게 연극 <오월의 신부>는 무대 위 ‘원판연극’과 더불어 무대 아래서의 원본에는 없는 기이한 설전으로 하여, 더욱 더 완벽한, 더욱 더 흐뭇하고 감동적인 연극으로 완성되던 것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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