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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16 19:36 수정 : 2005.06.16 19:36

김종철/녹색평론 편집/발행인

철학자 시몬느 베이유가 쓴 <뿌리내리기>라는 책이 있다.

베이유는 서른셋에 폐결핵으로 요절했지만, 그의 짧은 일생은 “도덕적 삶과 덕행을 불가능하게 하는” 현대세계에서 매우 희귀한 범례(範例)를 보여준다. 파리의 고등사범학교를 나와 생애 최후의 순간까지 이 천재적 여성이 걸어간 길은 한마디로 ‘진리’에 대한 몰두와 헌신이었다. 그리하여, 시인 T. S. 엘리어트는 베이유의 사후 그를 두고 “거의 성자에 가까운 위대한 영혼”으로 묘사했던 것이다.

베이유는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수 자격증을 획득한 후에 ‘엉뚱하게도’ 시골 중학교 교사가 되기를 자청하여 가난한 농민의 아이들을 가르쳤고, 얼마 뒤에는 자기 자신이 실제로 농촌의 포도밭 일꾼으로, 또 공장노동자로서 육체노동을 하는 삶에 뛰어들었다. 늘 두통에 시달리고,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 밑바닥 사람들과 함께 있고자 하는 그의 정신적 갈구를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

<뿌리내리기>는 프랑스가 나치 독일의 점령통치하에 있던 2차대전 말기 런던에 있던 드골의 임시정부를 위해서 쓴 책이다. 베이유는 곧 해방될 조국의 새로운 건설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구상해보라는 임시정부의 요청에 의해서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집필 완료와 더불어 그는 숨을 거두었는데, 이 죽음이 자살이라는 견해도 있다. 왜냐하면 폐결핵 때문에 충분한 영양을 섭취해야 한다는 의사의 지시를 거부하고, 점령하의 프랑스 동포들에게 주어지는 배급식량분 이상으로는 먹을 수 없다고 그가 끝까지 고집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이 책의 논리는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역사 전체에 대한 근원적인 회고가 필요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유럽 역사가 로마문명 이래 ‘뿌리내리기’에서 거듭된 실패를 경험해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베이유는 말한다. 오랜 세월 동안 뿌리가 잘려진 삶을 강요당해왔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나라에 대한 진정한 충성심이 있을 수 없고, 그 결과로 공동체의 토대가 끊임없이 파괴되고, 문명의 근본적인 소외와 타락이 심화되어왔다는 것이다.

베이유에 의하면, 유럽문화는 결정적으로 로마에서 거덜나기 시작했다. 그는 “로마에 의한 세계 훼손”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로마의 손에 한번이라도 닿기만 하면 무엇이든 모조리 더럽혀지고, 부패하고, 인간다운 삶이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로마의 제국주의 문명과 ‘팍스 로마나’라는 것은 극소수 지배자와 그 나머지 신민이라고 불리는, 본질적으로 노예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로 구성된 철저한 지배와 복종의 조직화에 의한 억압과 방탕의 체제였다. 로마 혹은 로마가 상징하는 것은 인류사의 크나큰 재앙이자 악의 근원이었다.

공동체 파괴 출발점은 로마
인간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무시
파괴적 로마문명은 여전
농사 경멸당하는
내 나라의 현실에 절망한다


로마는 철저히 노예사회였다. 유명한 폭군 칼리큘라 치하에서는 귀족도 사람이 아니었다고 베이유는 말하고 있다. 거의 날마다 열리는 연회 중에 황제는 귀족의 부인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들면 옆방으로 끌고 가서 욕정을 해결하고는 그 여성을 발가벗긴 채 남편이 보는 앞에서 내동댕이치곤 했다는 것이다. 이런 행동이 일상적으로 행하여졌다. 누구든 인간으로서의 위엄과 예의와 도덕을 갖출 수 없는 미치광이 사회였다.

로마가 이렇게 된 것은 그것이 한마디로 ‘교만’에 기초한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로마는 자기가 제일이라는 배타적인 자부심 속에서, 군사제일주의와 제국주의적 부국강병의 욕망에 사로잡혀 쉴새없이 정복을 일삼았다. 그 과정에서 로마인들은 인간으로서의 근본적인 한계를 망각하고, 무엇보다도 인간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요컨대, 그들은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 로마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문명이었다.

베이유는 이런 의미에서 로마문명은 오늘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히틀러는 극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세계는 크고 작은 히틀러들로 끊임없이 뒤틀려왔다. 베이유는 프랑스인들이 히틀러를 진정으로 극복하자면 자신들의 민족적 영웅 나폴레옹도 거부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정복자와 제국주의자를 기리는 강자숭배주의가 우리의 내면에 남아있는 한 진정한 ‘해방’은 불가능하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인간문화에서 무엇이 진실로 위대한 가치인지, 근원적으로 다시 물어보는 일이라고 그는 역설한다.

베이유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다운 삶의 회생을 위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하느님’ 즉 ‘진리’에 대한 복종이다. 그러한 복종은, 무엇보다도 인간이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 존재라는 사실과, 인간 생존의 기초가 어디까지나 육체노동이어야 한다는 사실에 겸허히 ‘동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야말로 ‘뿌리내리기’의 구체적 실천이다. 따져보면, 인간이 죽음을 부정하고, 스스로 이마에 땀을 흘리지 않고 삶이 가능하다고 착각하는 데서 모든 재앙과 비극이 시작되었음이 틀림없다. 당연하게도, 새로운 인간 공동체의 정신적 핵(核)은 농업노동이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최종 결론이다.

실제로 로마가 망한 것도, 그 배경에는 농토를 함부로 다루고, 농사를 깔보았기 때문이라는 결정적인 요인이 있었다. 로마는 본질적으로 정복의 문명이었기에 농민들은 병사로 징발되기 일쑤였고, 식량은 식민지의 노예농업을 통해 조달되었다. 그 결과 로마 본토의 농토는 버려졌고, 북아프리카와 같은 식민지의 토지는 땅에 대한 정성스러운 보살핌을 기대할 수 없는 노예들에 의해서 난폭하게 다루어지고, 혹사당함으로써 빠른 속도로 사막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로마의 멸망에서 어떤 교훈을 얻고 있는가?

나는 지금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농사가 끝없이 경멸당하고 온 국토가 투기꾼들에 의해 농락당하고 있는 내 나라의 현실에, 외람된 말이지만, 말할 수 없이 절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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