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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녹색평론 편집/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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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무시
파괴적 로마문명은 여전
농사 경멸당하는
내 나라의 현실에 절망한다
로마는 철저히 노예사회였다. 유명한 폭군 칼리큘라 치하에서는 귀족도 사람이 아니었다고 베이유는 말하고 있다. 거의 날마다 열리는 연회 중에 황제는 귀족의 부인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들면 옆방으로 끌고 가서 욕정을 해결하고는 그 여성을 발가벗긴 채 남편이 보는 앞에서 내동댕이치곤 했다는 것이다. 이런 행동이 일상적으로 행하여졌다. 누구든 인간으로서의 위엄과 예의와 도덕을 갖출 수 없는 미치광이 사회였다. 로마가 이렇게 된 것은 그것이 한마디로 ‘교만’에 기초한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로마는 자기가 제일이라는 배타적인 자부심 속에서, 군사제일주의와 제국주의적 부국강병의 욕망에 사로잡혀 쉴새없이 정복을 일삼았다. 그 과정에서 로마인들은 인간으로서의 근본적인 한계를 망각하고, 무엇보다도 인간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요컨대, 그들은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 로마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문명이었다. 베이유는 이런 의미에서 로마문명은 오늘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히틀러는 극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세계는 크고 작은 히틀러들로 끊임없이 뒤틀려왔다. 베이유는 프랑스인들이 히틀러를 진정으로 극복하자면 자신들의 민족적 영웅 나폴레옹도 거부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정복자와 제국주의자를 기리는 강자숭배주의가 우리의 내면에 남아있는 한 진정한 ‘해방’은 불가능하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인간문화에서 무엇이 진실로 위대한 가치인지, 근원적으로 다시 물어보는 일이라고 그는 역설한다. 베이유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다운 삶의 회생을 위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하느님’ 즉 ‘진리’에 대한 복종이다. 그러한 복종은, 무엇보다도 인간이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 존재라는 사실과, 인간 생존의 기초가 어디까지나 육체노동이어야 한다는 사실에 겸허히 ‘동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야말로 ‘뿌리내리기’의 구체적 실천이다. 따져보면, 인간이 죽음을 부정하고, 스스로 이마에 땀을 흘리지 않고 삶이 가능하다고 착각하는 데서 모든 재앙과 비극이 시작되었음이 틀림없다. 당연하게도, 새로운 인간 공동체의 정신적 핵(核)은 농업노동이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최종 결론이다. 실제로 로마가 망한 것도, 그 배경에는 농토를 함부로 다루고, 농사를 깔보았기 때문이라는 결정적인 요인이 있었다. 로마는 본질적으로 정복의 문명이었기에 농민들은 병사로 징발되기 일쑤였고, 식량은 식민지의 노예농업을 통해 조달되었다. 그 결과 로마 본토의 농토는 버려졌고, 북아프리카와 같은 식민지의 토지는 땅에 대한 정성스러운 보살핌을 기대할 수 없는 노예들에 의해서 난폭하게 다루어지고, 혹사당함으로써 빠른 속도로 사막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로마의 멸망에서 어떤 교훈을 얻고 있는가? 나는 지금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농사가 끝없이 경멸당하고 온 국토가 투기꾼들에 의해 농락당하고 있는 내 나라의 현실에, 외람된 말이지만, 말할 수 없이 절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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