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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23 16:11 수정 : 2005.06.23 16:11

김찬호/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강의교수

“내가 친구들과 함께 온천장에서 로마시대의 대욕탕 같은 커다란 풀 속에 타인과 함께 벌거벗고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다. 물 위에 머리통만 내놓고 황홀한 표정을 짓는 주위 사람들의 모습은 경이롭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나는 황홀하기는커녕 물이 너무 뜨거워서 비명을 지를 지경이었다. 우리들 프랑스인은 적당히 따뜻한 물로 욕조를 채우고, 물 속에 들어간 후에 더운 물을 추가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 섭씨 40도 정도의, 아니 때로는 그 이상의 뜨거운 물에도 유유히 앉아 있는 이 나라 사람들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쟝 뽈 마띠스 [프랑스인이 본 한국, 한국인] 중에서 )

인간은 유난히 물을 좋아한다. 영장류 가운데 사람만큼 목욕을 즐기는 동물은 없다. 우리는 왜 몸을 씻는가. 단지 생리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목욕은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일상화되었다. 로마의 호사스러운 목욕탕이 쉽게 떠오르거니와, 16세기 중반 영국에서 온천장이 갑자기 대거 출현한 것도 당시 사람들의 문화적 욕구와 맞물려 있었다. 설혜심 교수는 <온천의 문화사>라는 책에서 당시 영국에서 온천의 발달을 종교개혁의 여파 속에서 레저를 적극적으로 상업화시켜간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편 온천 문화는 일본에서 훨씬 화려하게 꽃피웠다. 2000개 이상의 온천장이 공식 등록되어 있고, 집에서도 목욕하는 습관이 일찍이 정착되어 있었다.

그런데 대중탕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데우는 것으로 말하면 한국인이 그에 못지않은 달인이다. 그래서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은 목욕탕 풍경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그 목욕탕이 진화하여 새로운 업태로 선풍을 일으킨 것이 바로 찜질방이다.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때 창업의 열기 속에서 등장한 찜질방은 2004년 5월 1600개를 넘어섰다. 점점 대형화되는 추세 속에서 현재 가장 큰 것은 건평 1만평이나 된다. 역사상 이렇게 큰 ‘방’은 어디에도 없었을 것이다.

‘찜질’의 말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온천 또는 뜨거운 모래나 물 따위에 몸을 담가 땀을 흘려 병을 고치는 일’이다. 영어에서는 ‘formentation'이라는 어려운 용어가 대응한다. 서양인들에게 찜질은 그만큼 특수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인에게 그것은 생활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되었다. ‘질’이라는 접미사는 삽질, 걸레질, 딸꾹질처럼 되풀이되는 동작이나 행동임을 나타내는데, 찜질은 그만큼 빈번하게 이뤄지는 것이다. 몸을 찌다니! 섬뜩하기까지 하다. ‘불가마’는 더욱 적나라하지 않은가. 한국인들은 뜨끈뜨끈한 것을 유난히 좋아한다. 찌게나 탕, 온돌이 그 징표다. ‘ondol'은 ’kimchi', ‘Taekwondo' 등과 함께 널리 알려진 한국산 영어다. 찜질방의 정수는 널찍하고 따뜻한 방바닥인데, 이는 온돌 문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완전히 남남끼리
그것도 성의 장벽을 넘어
스스럼없이 잠을 자는 것은
얼핏 기괴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사적 경계가
홀연히 사라지는 경험이
찜질방의 매력이리라

그런데 찜질방은 기존의 목욕탕, 온천, 사우나, 한증막 등과도 구별되는 공간이다. 아니 그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 확장한 돌연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핵심은 그 안에 수많은 ‘방’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목욕과 관련해서 동굴방, 산림욕방, 참숯방, 황토방, 소금방, 얼음방, 자수정방, 히노끼방 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욕탕 외에 찜질방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실로 다양하다. 식당, 헬스클럽, 안마, 수면방, 놀이방, 노래방, PC방, 영화방, 소연회장, 기도방, 야외 폭포 정원, 연예인들의 공연이 이뤄지는 중앙 광장…. 바야흐로 찜질방은 복합 레저타운을 지향하면서 그동안 왕성하게 증식해온 방들을 총집결시키는 소우주다.


이 별천지에서 사람들은 간단하게 변신한다. 소비자들은 목욕재계로 몸을 정결하게 한 다음 유니폼으로 갈아입음으로써 이 희한한 영토의 일원으로 거듭나게 된다. 거기에서는 부와 지위, 세대 그리고 남녀의 구분이 사라진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몸의 현상이 숨김없이 드러난다. 찜통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을 서로 바라보는 것은 각별한 느낌이다. 특히 남자와 여자가 마주앉아 분비물을 노출하는 것은 특이하다. 화장을 열심히 하는 젊은 여성들이 맨 얼굴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드러낼 수 있음은 무슨 까닭일까? 과연 그곳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해방구다.

그런 생각은 사람들이 잠자는 모습에서 더욱 확연해진다. 찜질방의 진국을 맛보려면 하룻밤을 지내보아야 한다. 그 넓은 마루에 낯선 사람들이 엉클어져 집단 취침을 하는 광경은 마치 피난민 수용소를 방불케 한다. 여기저기 들리는 코 고는 소리, 대책없이 벌린 팔과 다리 그리고 입, 밀실에서나 취할 연인들의 포즈…. 잠이란 지극히 사적인 행위인데, 완전히 남남끼리 그것도 성의 장벽을 넘어 이토록 스스럼없이 침실을 공유한다는 것은 얼핏 기괴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런데 바로 그 ‘부담 없음’, 사적 영역의 경계가 홀연히 사라지면서 경험되는 묘연한 일체감이 찜질방의 매력이리라.

동서고금을 통해 목욕탕은 휴식, 치료, 위생, 사교, 오락 등의 기능을 담아왔다. 찜질방은 그러한 전통을 집약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렴한 숙소로도 애용된다. 출장 나온 직장인, 귀가를 포기한 취객, 외국인 노동자 등이 고단한 몸과 마음을 의지하는 여인숙이다. 물론 여럿이 함께 온 손님들이 훨씬 많은데, 그들은 여기에서 나른하고도 농밀한 만남을 즐긴다. 가족, 회사 동료, 연인, 동네 계모임, 그리고 청소년들의 또래 집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단위들이 모여들어 어우러지는 찜질방은 21세기의 동네 사랑방이 아닐까. 실제로 지방 소도시에서는 그곳이 공회당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찜질방에서 흘리는 땀은 관계의 끈끈함에 대한 증거인가. 또한 우리가 심신의 이완과 양생에 이토록 집착하는 것은 우리의 삶이 사납고 가파른 긴장에 휩싸여 있기 때문인가. 찜질방은 우리 시대 결핍과 안위의 애틋한 표상이다.


▲ 한겨레 책·지성 섹션 18.0°는?

금요일에 발행하는 섹션 ‘18.0°’에는 에세이와 담론, 책과 문학 이야기를 타블로이드판 32면에 모았습니다. 18.0°는 두뇌활동이 가장 활발한 대기 온도입니다.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 김윤식(문학평론가) 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 이재현(문화평론가) 김찬호(한양대 강의교수) 김어준(<딴지일보> 총수) 홍은택(전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최보은(전문 인터뷰어)씨 등 우리 시대 논객들이 한국 사회와 인물들을 탐구합니다. ‘한겨레 그림판’ 초대 화백으로 한국 시사만화사에 한 획을 그은 박재동 화백의 그림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없고, 다른 신문에도 없는, 지식과 사색의 향연으로 독자들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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