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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조선, 생활과 사유의 변화를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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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격 이규경 저작 연구
서구 과학지식 들어오던 시기
세시풍속·의학·신체관등 변화 살펴 %%990002%% 그는 인위적으로 색욕은 막을 수 없다면서 과부의 재가를 허용해야 한다든가, 예방법의 도입에 큰 관심을 두어 종두법, 우두법을 소개하는 인식의 변환을 보여준다. 가장 큰 인식의 전환은 신체의 중심을 근골이라고 보는 견해. 이는 패션, 체육, 훈련 등이 신체를 보는 관점에 포함되고 육체 수양을 중시하는 근대적인 인식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양반 부인 가운데 아이를 잘 낳는 여자가 드물고 노비 가운데 아이를 못 낳는 부인이 드문 이유를 노비들이 평소에 몸을 많이 움직여 근골이 부드럽고 건강하기 때문임을 논증한다. 친자 여부를 확인하려면 피를 합쳐 섞이면 친자 그렇지 않으면 남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지만 그 무렵 친자 여부가 중요하게 된 사회상황 반영한다. 회충 구제에 망건가룻물, 난산 때 사모 삶은 물, 급사 위기때 다른 사람 입던 옷의 땟국을 마신다는 풍습의 기록은 보너스. 이규경의 특장 중 하나가 대부분의 학자들이 하찮게 여긴 복식에 눈길을 준 것. 그것도 관념적이 아니라 시시콜콜 관찰하여 기록하여 100년 전 의복을 복원하는 실마리가 될 정도다. 의복의 소재, 쓰개류 및 머리모양, 의복, 상례복 등 등. 특히 각각의 의복, 옷의 구성부위의 명칭과 바느질 방법 및 도구의 명칭 등 한자어를 한글로 설명해 놓아 당시에 사용된 명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비천한 자는 아무리 추워도 방한모 휘항을 존귀한 자 앞에서 쓸 수 없었다. △남성은 관모로, 여성은 머리 장식과 머리모양으로 신분을 구별한다. △혼례 때의 머리장식인 어여마니가 본디 왕후가 쓰던 것이다. △사대부 부녀 귀에 거는 귀걸이, 여염집 여인과 천녀는 귀를 뚫어 귀걸이를 했다. △남자들도 귀걸이를 했는데 선조때 이후에 그 풍습이 사라졌다는 등의 얘기는 재미있다. 장애인도 살기 좋았던 시절 시각 장애인의 삶과 그들에 대한 사회의식을 분석한 권말의 논문은 우리의 현실을 되짚어보게 한다. 조선시대에는 시각 장애인을 자립 가능한 사람으로 분류하여 직업을 갖고 자립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관상감이나 관습도감에 이들만을 위한 관직을 설치하여 벼슬과 녹봉을 주었다. 그들은 점복 독경 관현악 연주 등 다양한 직업으로 사회활동을 했으며 일부는 권위자로 이름을 떨쳤다. 시각 장애인들은 장애에 크게 개의치 않고 살았으며 사회에서도 이를 특별히 경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기 이후 유학자들이 장애인들의 역할을 배척하면서 후기로 갈수록 그들의 지위가 하락하고 20세기 중반 이후 산업화와 함께 거리로 내몰렸다는 거다. 이 책은 <오주연문장전산고>의 1417항목 가운데 겨우 40개를 훑었을 따름. 워낙 방대한 양인데다 초서로 되어 있어 국역작업조차 중단되었다가 최근에 다시 시작한 상황이다. 자신들의 작업은 빙산일각이라며 원저 교감을 포함해 전문가가 붙어야 본격 연구가 가능하다는 게 저자 가운데 한사람인 주영하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의 말이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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